그러던 중 내게 중요한 만남을 준 첫 이성과의 만남은 내게 하느님의 사랑을 조금 느끼게 해 주었다. 어린 나이인 우리의 만남은 진실로 순수했고 서로의 미래를 진심으로 빌어주며 안녕을 고했다. 서로 동갑이었던 우리 21살의 첫 만남은 그저 순수한 정말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으로 기억된다. 그 후에 나는 결혼이라는 의미와 종교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게 되어 많은 방황을 하게 되며 또 한 이성과의 만남 속에 신앙이라는 아주 긴밀한 인간관계의 방황을 느끼며 그 친구와의 이별후에 절실히 하느님을 찾게 된다.
내 나이 27세, 처음 성당을 찾은지 꼭 10년 만에 많은 만남과 인생을 생각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세례 받고 견진성사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정말로 의미 있는 축복받은 생활을 하게 됐다. 하느님을 모르고 살던 내 이전의 삶과는 너무도 다른 정말 하루하루가 싱싱하게 윤기 돋아나는 이슬처럼 신선함을 느끼며 성경공부와 직장에서의 종교 활동과 봉사활동에 참여하였다.
하느님과의 만남의 새로운 생이 내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가를 느꼈다. 모든 사람이 아름답게 보이고 새롭게 태어난 내 삶, 하느님을 모르고 살았으면 얼마나 나의 삶이 무의미했을까 하는 엄청난 내 자아발견…. 그 후에 결혼의 의미조차 내겐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하여 수도자로서의 삶도 생각해 보았으나 그 또한 아주 어려운 것이라는 생각 속에 바친 묵주의 9일기도는 『주여! 나의 길을 인도하여 주소서』였다. 그 기도 속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는데 개신교 신자였던 그는 이미 가톨릭에 많은 관심을 보여 1년전부터 성당에 나가고 있었다.
군인이었던 그는 만난 지 세 번 만에 내게 청혼을 했다. 그런 그가 내겐 이미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인연으로 받아들여 1985년 1월 12일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관면혼배로 명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시부모님과 함께 살며 직장생활을 하던 나는 남편의 근무지 이동으로 또한 나의 첫 아이 임신으로 인하여 그토록 정들었던 직장을 그만 두게 된다. 나는 오직 한 지아비의 훌륭한 아내요 사랑하는 자식의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토록 손자를 원하시던 시부님께 그해 가을 정말 귀한 첫 손자 「은식」을 안겨 드렸다. 남편이 장교였으므로 우리는 잦은 이사를 하게 되었고 주거도 해결하기 어려운 사정이 되자 모시고 살던 시부모를 따로 두고 우리가족만 이동해서 살게 되었다.
사랑하는 아들 은식이는 무럭무럭 자랐지만 생후 6개월이 지나면서 자기성질을 못 이겨 울다가 숨이 멎는 듯 새파랗게 얼굴이 변하는 「호흡정지 경련」이라는 소아성 질환을 갖게 됐다. 우유 달라고 한 뒤 10초만 지나도 못 참겠다며 얼굴빛이 파랗게 되는 증상이 4살까지 계속됐다. 그 후로는 말뜻을 알아듣게 되자 그 증상이 없어지게 되어 나는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그 후 은식이는 똑똑하고 튼튼한 아이로 자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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