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1일 오전 9시 15분경 사무실 전화벨이 유난히 크게 울렸던 수화기를 들자마자 울음 섞인 소리로 성당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청천벽력이었다.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1백6년 동안 칸막이와 마룻바닥을 제거한 것 이외에는 별로 손대지 않았으며 몇 번의 보수공사 외는 6.25전쟁 때로 탈 없이 원형이잘 보존되어 있는 문화재가 소실되고 있다니 모든 힘이 빠졌다. 황급히 몇몇 분들께 연락을 취하고 급히 차를 몰았다. 노량진에서 중림동까지 20분 거리인데도 몇 시간 걸리는 것 같았다.
3천여 신자의 정성과 땀과 믿음이 구석구석 숨이 있는 성당. 서소문 밖 네거리의 순교지가 바로 바라보이며 44인 성인의 순교의 얼이 얼룩져 있는 성당이 이렇게 불타고 있다니 넋을 잃었다. 손이 떨려 핸들을 잡을 수가 없었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하느님 죄송합니다. 순교자님 미안합니다.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기도 소리가 목이 메여 나오지를 않았다. 하느님과 순교자와 선조들께 대한 죄스러움이 두고두고 가슴에 사무치게 되었다.
이 엄청난 화재 속에서도 검게 탄 감실 안에 성체를 아무 손상없이 그대로 모실 수 있게 되었으며 제의도 그대로 보존되고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기적이 아닐 수 없으며 한국천주교회에 하느님의 은총이 듬뿍 내려진 것이다.
이젠 정신을 가다듬고 주님께 기도드리며 무너진 종탑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세우는 마음의 성전을 보시고 허물어진 성전보다 더 아름다운 성전을 다시 세워 주실 것이다.
우리들은 회개의 성전, 기도와 희생의 성전, 용서와 사랑의 성전을 세워서 우리나라 최고의 성지에 걸맞는 곳으로 다시 태어나고 순교자의 영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며 영원히 불에 타지 않은 튼튼한 마음의 성전을 지어 갈 것이다. 성당을 아끼는 많은 분들의 격려와 기도와 희생을 바라는 마음 더욱 간절할 뿐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