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은 94년 4월 30일 성유축성미사에 참석한 사제, 수도자들에게 재개발사업에 따른 서민주택문제의 심각함을 설명한 후 도시빈민단체가 벌이는 입법화 운동과 1백만 명 서명운동 참여를 공식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입법화 계획은 국회심의과정에서 무산됐고 기왕에 있던 법 규정마저 삭제돼 마치「동냥온 사람 쪽박깬」상황이 벌어졌다. 그 후 4년, 서울 행당동 산언덕의 세입자들은 대책 없는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물거품된 입법화운동
소위 행당동 세입자 사태란 서울시 재개발 업무지침의 모순과 이 모순을 고집하는 행정에서 비롯된다. 지침의 이주대책기준은 최초 사업계획 결정 고시일과 추가 변경고시일 3개월 전 입주자에게 임대주택이나 이주비를 주고 있는데 행당동 세입자의 경우 이주대책 대상인 추가기준일(94.3. 16)보다 훨씬 전에 입주했음에도 최초기준일(86.12.9)보다 늦게 입주했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가옥철거 과정에서 이 세입자들과 철거반원의 심한 충돌이 있었고 사태가 발생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세입자의 주거대책이 없다는 것이 사태의 전말이다.
문제가 된 행당동 사태의 해법을 제시하기 전에 입법화과정을 살펴보면 95년 4월 제정구의원이「불량주거지 개선을 위한 법률제정안」을, 김중위 의원이「도시재개발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두 법안은 서민주택문제를 완전히 해결함에는 미흡하나 많은 연구와 공청회를 거친 법안으로 국회심의가 기대되었다.
그러나 95년 11월 23일 당시 건교부 오명 장관이 국회 건교위에서「재개발구역 세입자 임대주택공급내용을 법에 명문화할 경우 재건축, 대규모 공공사업 등의 세입자대책도 강구해야 하며 2천년까지 총 1조3천억 원의 재원이 필요하나 재원부족으로 임대주택을 짓지 못할 경우 사회적 물의가 예상된다」며 난색을 표하자 국회가 2개 법안을 하나의 안으로 묶으면서 세입자 임대주택사업의 법적 근거인 구도시재개발법 제20조 ③「등기된 임차권자를 참여조합원으로 가입시킬 수 있다」는 조항을 삭제함으로써 수년간 추진돼온 입법화 운동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구법 제20조 ③규정은 법리적으로는 미흡하나 대법원이 서울시 업무지침의 법적성격 보완규정으로 해석하여「세입자가 원하면 임대주택을 주어야 한다」라고 판결한바 있는 규정이다. 또. 건교부의 정책변경은 실정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안 없는 법 규정 삭제는 헌법 제35조 ③의 「국가는 주택개발정책을 통해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에 위배된다.
재개발조합은 세입자용 임대주택을 건설, 공급하며 시는 매년 수천억 원을 임대주택 매입비로 지출하고 있다. 그러나 재개발ㆍ임대주택사업은 서울시의 고유사업이 아니고 예산도 서울시 단독으로 부담할 법적근거가 없다. 따라서 서울시는 국회ㆍ정부가 대안 없이 법 규정을 삭제했으니 누가, 어떤 돈으로 추진할 것인가를 따져야 했다.
그러나, 서울시가 주춤하는 사이 건교부는 근제법규정을 서둘러 삭제하며 발뺌을 했다. 국가ㆍ지방사무의 분담문제가 민감한 사안이고 법 규정 삭제로 임대주택공급의 명분이 없어 졌는데도 시는 96년 12월 임대주택 공급내용을 담은 조례를 제정했고 98년 1월 31일 규칙을 제정, 시행중이다.
엄격히 말해 이는 입법체계상 잘못된 사례일 뿐만 아니라 행당동 사태를 해결하는 것도 아니므로 매우 걱정되는 사안이다.
행당동사태의 해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첫째 정책방향 결정이다. 건교부나 서울시가 재개발, 재건축 세입자대책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은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준다.
토지공개념처럼 주택도 소유개념에서 이용개념으로 전환하는 추세이므로 임대주택공급은 복지정책 차원에서도 확대시킬 분야이다.
둘째 법체제의 정립이다. 행당동 세입자의 경우처럼 주거권 사항은 모법인 도시개발법에 규정하고 법의 위임이 있는 경우에 하위법인 조례ㆍ규칙으로 정해야 하나 행당동의 경우 법규가 아닌 지침에 따른다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구법 제20조 ③의 내용을 발전시켜 임대주택 건설내용을 포함시키는 법 개정뿐이다. 서울시도 조례ㆍ규칙의 내용을 다시 보완하여 시행하면서 상위법 개정을 기다려 보는 것이다.
100대 과제 수준으로
25일 출범한 새 정부의 100대 과제 중에는「불합리한 규제철폐」가 있다. 과거에 만든 법 중에는 새 시대에 적용하기 힘든 낡은 법, 서로 저촉해 쓸 수 없는 법, 규제일변도의 법이 허다하다. 따라서 입법개혁과제를 100대 과제수준으로 설정하고 법률, 법규의 입안, 여론수렴, 토론, 의결과정 등 전과과정을 뜯어 고칠 필요가 있다.
국가사무와 자치단체 사무의 구분을 명백히 하여 지방자치의 틀을 다져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행당동 사태는 작게 보일지 모르나 도시행정의 잘못된 표본으로 삼아 해결에 성공함으로써 더 큰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주면 좋겠다. 바라건대 새로운 변화를 기다리는 모든 국민의 소망을 풀어주는 새 정부가 되길 기원한다.
♣바로잡습니다
지난 3월 8일자 8면 기고문 「새 정부에 바란다」의 필자 전기성씨는 「한국행정법제연구소 소장」입니다.(1998-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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