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수 년 전에 여든이 훨씬 넘으신 노수녀님과 함께 살 기회가 있었다. 당시는 몰랐지만 지금 그 분 생각을 하면 참 대단한 분이셨다는 생각이 든다.
커다란 대단함이 아니라 수녀원의 복잡한 시간표에 늦은 일 없으시고, 꼬부랑 연세에도 부설 작은 약국에서 약 싸는 일 거드시며, 자신의 빨래를 손수 하시고 그 외에는 기도실 터줏대감님처럼 늘 기도하시는 작은 것들이 모여 생긴, 자신의 삶에 흐트러짐이 없는 그 모습에서 느낀 대단함이다.
그 수녀님께서 가끔 쓰시는 말씀 중에 『그만둬』라는 말씀이 있었다. 누가 장난이라도 칠라치면 계단 오르시는 것이 힘들어보여 팔짱이라고 끼고 부축하려 할 때면 손을 내저으시고 얼굴에는 빙긋 미소를 띠며 하시는 말씀이다. 그 말을 재미있어 하다 보니 은연 중 나도 그 말을 쓰게 되었다.
나는 그 말을 주로 기도실에서 많이 썼는데 특히 자매들과의 관계안의 어려움이 있을 때, 힘든 일, 어려운 사람에 관한 나쁜 감정을 되씹고 있을 때였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에게 해롭게 한 사람, 사건을 쉽사리 잊어주지 못하고 미워하고 용서 못하고 만족 못하는 이 모든 마음들이 신경증 불안 우울증 스트레스 등을 유발시킨다.
『그만 둬』. 이 말은 살살 꼬리치고 일어나는 나쁜 감정에 찬물을 끼얹는 역할을 한다. 이 말은 나쁜 생각의 중지, 그리고 감정을 한걸음 미루어 이성을 찾을 여유를 주며 여기에 「주님의 뜻찾기」라는 양념을 치면 몸에 이로운 사람이, 사건이 되게도 하는 말씀이다. 이제 그 분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만 둬』. 이는 내 마음속에 자리한 그리고 지금도 때때로 애용하는「말씀」이 되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