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가톨릭신문에 보도된 양근(양평)ㆍ여주 순교터 발굴은 우리의 역사 인식의 단편(斷片)을 보여준다.
이번 순교터 발굴의 결정적 자료인 척암 이기경의 「벽위편」(闢衛編)은 천주교를 배척하거나 반서학(反西學)의 이론을 담은 문헌과 상소, 박해ㆍ관련 자료 등을 모아 편찬한 대표적인 척사론 서적으로 한국 천주교회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놓쳐서는 안될 필독서요 기본자료이다.
이기경의 「벽위편」은 특히 1801년 신유박해 직후에 편찬돼 박해 전개과정을 상세히 증언하고 있어 신유박해 2백주년을 맞아 당시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 천주교회로선 글자 한자 소홀히 할 수 없는 귀중한 책이다.
문제는 왜 이제 시작했느냐는 것이다. 오늘의 학자들과 교회 관계자들이 순교터를 발굴,정확한 위치를 확인한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 되지만 왜 이전 학자들과 교회 당국이 필독서로 손꼽히는 서적에 방향과 거리까지 자세히 기술된 순교터를 확인, 확보하지 못했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지금까지 잊혀져온「양근」「여주」순교터의 편의적(便宜的) 역사의식 의 결과가 얼마나 엄청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제 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행정 당국과 지주(地主)의 협조를 얻어 「이곳이 천주교 순교터입니다」는 표지석을 남기는 것밖에 없게 됐다.
새 시성절차법에 따르면 시복시성 대상자의 행적을 예비심사할 때 묘지는 물론, 순교자와 죽었던 침실이 있다면 그곳 조차 조사해 성실히 검증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이처럼 교회는 시복시성 대상자들이 죽었던 장소를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진작 한국 천주교회는 시복시성을 위해 교회가 중시하는 순교자들의 무덤과 순교지에 대해 소홀해 왔다. 물론 잘 개발, 보존된 순교 성지와 교회 사적지, 유적지들이 있지만 유해공경과 성지개발의 미명아래 아직 시복조사조차 하지 않은 초기 순교자들의 무덤이 이장되고, 가묘가 만들어지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이것 역시 편의적 역사의식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다 놓치고, 불필요한 개발에만 관심을 쏟아온 결과이다.
교회 역사학자들은 이제 남은 마지막 순교터 확인 작업은 「수원」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곳 역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뒤덮여 모든 흔적과 자취가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 분명하다.
수원 순교터 발굴작업의 진척을 기대하며 그 동안 소홀시 돼 왔던 이기경「벽위편」이 신유박해 2백주년을 맞아 한글본으로 출간되길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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