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우리 사회에서 커다란 이슈 중 하나는 산부인과 의사들이 주축이 되어 낙태시술을 하는 동료 산부인과 의사를 고발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 고발은 결국 증거부족이라는 이유로 처벌은커녕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고발했던 의사들은 오히려 ‘무고죄’의 협박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산아제한을 통한 가족계획을 정부가 주도하면서 지난 40년이 넘도록 우리 사회에서 낙태행위에 대한 암묵적인 용납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낙태에 대한 처벌은 명시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로 사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사문화된 법, 그것이 바로 현재의 낙태죄이다. 한 해 34만명의 아기가 세상 빛을 보기도 전에 부모의 선택으로 인해 엄마의 뱃속에서 으깨어지고 찢겨서 죽어간다. 하루 천 명의 아기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임을 당하고 임신한 여성 7명중 3명이 낙태시술을 택하는 낙태공화국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다. 아무런 제재도 없고 아무런 대안도 없이 낙태시술은 너무나 쉬운 일이 되어버렸다. 낙태시술을 해주는 산부인과를 쉽게 찾을 수 있으며, 사회적 경제적 이유의 낙태가 엄연한 불법인 나라에서 오히려 합법인 나라보다 더 높은 낙태율을 보이고 있다.
낙태시술에 대한 공신력있는 유일한 통계는 2005년도 통계이다. 그 이후 정부 차원에서 파악한 통계도 없고 정부는 낙태를 제재하거나 통제할 의지도 없었다. 그나마 있는 2005년도 통계를 보면, 낙태시술의 95%는 사회적, 경제적 이유이다. 즉, 미혼이라는 이유로, 자식 키우는데 돈이 든다는 이유로, 장애아라는 이유로, 직장에서의 차별대우 등을 이유로 뱃속의 자식을 낳아 키우는 것보다 죽여 없애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돈이 생명보다 우선시되고, 사회적 차별이 생명보다 더 우선시되는 세상이다.
어떤 이들은 낙태시술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나 ‘행복추구권’이라고 주장하는 부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알아야할 것은 결코 ‘자식’은 ‘자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생명여탈권을 가지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자식을 죽임으로써 부모로서의 책임을 피하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는 인정될 수 없는 일이다.
낙태시술을 받는 가장 많은 이유가 사회적, 경제적 이유라면 그 이유를 해결할 대안을 마련하고 그 것을 해결해달라고 주장해야지, 엉뚱하게 죄도 없는 뱃속의 자기 자식의 생명을 빼앗음으로써 해결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우리는 아동에 대한 폭행에 대해서는 분노한다. 영아살해에 대해서도 분노한다. 어른을 대상으로 한 범죄보다 더 분노하는 이유는 저항할 능력이 없는 힘없는 아이들을 상대로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낙태란 무엇인가? 낙태는 뱃속에서 심장이 뛰고 살아 꿈틀거리고 반응하는 태아를 짓이기거나 사지 육신을 조각조각내어 엄마의 몸 밖으로 끄집어내거나 조금 큰 아기는 일부러 분만을 시켜 세상 밖에서 질식사하게 해서 죽이는 일이다. 영아나 아동보다 더 약하고 저항할 기회조차 없는 태아에 대해 생명파괴라는 일방적인 엄청난 폭력을 태아에게 가하는 것이 바로 ‘낙태’이다.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뱃속에 있으니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이유로 낙태문제를 눈감고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인가?
낙태문제에 우리 모두가 모른척 하고 있는 이유는 자기에게 주어진 임신과 양육에 대한 책임을 낙태를 함으로써 벗어나려하는 남성과 여성들의 이기심과 미혼모, 장애아, 다자녀, 저소득층 등등의 임신과 양육에 대해 돈을 쓰며 지원하는 것이 내키지 않은 우리 사회와 낙태시술이라는 돈되는 시술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의사들의 이기심이 모두 다 낙태공화국의 공범들인 것이다.
태아는 결코 여성의 몸의 일부가 아니며, 부모가 자식의 생사여부를 결정할 권리도 없고, 뱃속의 자식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행복을 추구해야할 권리도 인정될 수 없다.
우리가 태어난 아이에 대해 키우기 힘들다고 ‘갖다버릴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양육할 권리’만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부모는 임신된 자기 자식에 대해서 오로지 ‘출산할 권리’만 있을 뿐 ‘낙태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생명경시의 우리 사회, 자신의 뱃속 자식을 죽이는 일이 하루 천 명씩 발생하는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가 생명존중의 길로 가는 것은 요원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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