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불과 이틀 앞둔 구랍 30일, 소위 문민정부라 자랑하던 김영삼 정부가 스물 세명의 생명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
이날 사형집행은 문민정부 들어 94년 10월 15명, 95년 11월 19명에 이은 세 번째로 임기 중 총 57명에 달하는 사형수들의 사형을 집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용서받기 힘든 죄를 지은 것은 분명하지만 ‘하느님이 부여하신 천부적인 생명’마저 말살해 버리는 보복살인인 사형제도는 더 이상 남아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우리 교회의 입장이고 보면 이번 사형집행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사형이 집행된 정은희(미카엘)씨 등 의 경우 안구와 시신 등을 기증, 이 사회에 대한 보속의 증표로 남기는 등 죽는 순간, 지은 죄에 대한 이들의 통절한 반성과 뉘우침을 짐작케 하고 있다. 철저한 사형옹호론자라 할지라도 사형수의 진솔한 내면이나 마지막 형장에서의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하나같이 사형반대론자가 된다고 한다.
사형제도는 죄에 대한 징벌과 예방을 극대화시킨다는 논리로 존속되고 있지만 이미 세계 각국의 경험에서 보듯 사형은 결코 그러한 결과를 얻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생명의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파괴, 더욱 흉포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의 경우 사형제도가 존속되고 있는 주에서는 그렇지 않은 주에 비해 살인사건등 흉악범죄가 더욱 늘고 있고 범죄유형도 더욱 잔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형수가 생긴 것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흉악범이 되도록 방치한 가정이나 사회도 그 책임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 또한 설득력이 있다. 아울러 사형제도는 죄를 지은 사람이 회개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보다는 삶의 희망을 송두리째 박탈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형제도는 정권유지의 한 방편으로 이용돼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해 왔으며 동시에 인간의 오판에 의한 사형집행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아무리 3심을 거친다 해도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오판할 수 있으며 법관이나 행정책임자가 인간의 생살여탈권까지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교회의 입장이다.
우리는 이미 인간의 오판과 보복에 의해 희생당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인간에 의한 사형제도가 얼마나 불합리하고 허무맹랑한 제도인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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