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1월, 나는 경기도 광탄에서 교육자이시던 아버님과 현모 양처의 희생적인 어머님을 둔 2남3녀의 셋째 딸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이 가득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내가 태어날 당시 우리 집은 4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다.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 그리고 사랑하는 두 오빠와 두 언니, 이렇게 9식구가 함께 살고 있었다. 종교는 갖고 있지 않았으나 큰소리 한번 나는 일이 없었던 정말 화목한 가정이었다.
내가 태어난 후에 함께 사시던 증조할아버지께서 노환으로 돌아가시고 아주 잘생기고 똑똑했던 내 남동생은 엄마와 나와 함께 아버지가 당시 교직의 이동으로 문산에서 떨어진 금촌이라는 곳에 계실 때 열차를 타고 정거장에 내리다 많은 짐과 동생을 먼저 내려놓으시고 나를 데리러 오시다가 기차가 출발하는 바람에 동생이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내 나이 다섯 살, 내동생은 세살이었다. 나는 기차에 그냥 타고 있었고 사고로 기차는 멈춰 있었다. 엄마와 동생과 함께 처음 타고 간 즐거운 아버지와의 상봉길이 우리를 갈라놓을 줄은 몰랐다. 기차에서 엄마가 주시는 맛있는 것을 나눠 먹던 생각과 열차가 멈추고 한참 지체했었던 기억 그리고 나는 누가 집에 데려 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많은 집안 어른들이 오셔서 울며 슬퍼했던 기억은 난다.
자식을 잃으셨던 부모님의 슬픔을 내가 자식을 잃고 나니 홀로 되신 어머님의 한 많으셨던 생애가 더욱 저며 온다. 이제 또 사랑하는 외손자를 잃으셨으니 내가 살아온 과거의 기억 중 지워지지 않던 부분이다. 우리 친 할아버지께서는 우리 아버지께서 6세 되던 해에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오로지 독신으로 우리 아버지만을 키우며 73세가 되시도록 외로운 생을 사셨다. 나의 부모님은 사랑으로 늘 화목한 가정을 지켜 주셨고 우리 형제 또한 사랑이 가득하여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중 내가 11살에 큰 오빠는 문산 임진고등학교 6회 졸업생으로 당당히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아버지께서 늘 바라시던 염원대로 말이다. 우리 형제는 오빠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 당시 오빠는 미군 부대가 인접해 있는 문산에서 살면서 미국사람과의 간단한 통역은 다 할 정도로 영어회화를 잘하였다.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우려고 미군부대에서 신문배달(News Boy)를 했던 오빠는 그 당시 생활이 어려웠을 시절에 가끔 간식거리 통조림을 잘 갖다 주어 우리들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오빠는 챙모자와 영어로 씌여진 은색 점퍼를 입고 어려서 부터 남달리 부지런했다.
※이번 주부터 대전교구 정림본당의 황명하(아녜스)씨의「사랑 하던 내 아들을 하늘나라에 보내고…」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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