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에겐 새로운 천 년대를 태동시키는 세계사적 흐름을 투시하는 형안과 지혜와 용기가 요구된다. 김당선자의 탈지방색 인사의지와 행정개혁 의지 등은 좋은 징조로 보인다”
“무엇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문제이다. 사실 모든 것은 인간이 하며 인간을 위해 하는 것이다…. 새 대통령의 지도력에 하느님의 크나큰 축복이 내리시기를 기도드린다”
새해가 밝았다. 독자 여러분『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평화를 누리십시오』
매년 이맘때이면 서슴지 않고 희망찬 새해를 축원했는데 이번에는 표현키 어려운 착잡한 감정이다. IMF한파 때문인가 보다.
우리는 새 대통령을 선출했다. 그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다 같이 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에게 적극 협력하여 이 난국을 극복해야겠다. 먼저 김당선자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이번 김당선자는 21세기를 열 뿐만 아니라 가톨릭교회를 위시하여 세계 각국이 그 준비에 여념이 없는 새로운 천 년대를 여는 것이다.
암울한 현실
그동안 세계는 우리를 경제파탄 상태로 보아 앞 다투어 돈을 빼내갔다. 우리는 참으로 어려운 국가 위기에 몰렸다.
많은 사람은 6.25직후를 생각했다. 필자는 일제 식민지 시작 때를 연상했다. 그것은 IMF원조 때문이 아니라 경제회생 불능상태로 몰려가지 않나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필자는 우리 국민의 저력을 믿고 있다. 다행이 그런 위기는 넘겼다. 그러나 국민들은 막대한 국제채무와 심각한 경기침체로 여러햇동안 많은 고통을 당하게 됐다. 이제부터는 대통령도 변하고 기업인도 근로자로 관료도 변하여야 한다. 특히 정치인과 경제인 기업인 관료들이 변하여 경제유착을 단호히 끊고 부정부패와 작은 뇌물관행을 일소해야 한다.
우리는 새롭게 되어 살아남기 위해 먼저 오늘 위기의 원인을 대충이나마 짚어 보고자 한다.
멀리는 박군사정권까지 소급되지만 직접적으로는 김영삼 정권이 이런 파탄의 장본인이다. 김정권은 문민정부라는 기치를 들고 소리만 높였을 뿐 정치, 경제, 통일, 외교, 민생, 치안 등 모든 면에서 총체적 파탄을 몰고 왔다. 필자는 김영삼 정권이 문민(文民)정부라는데 반감을 느꼈다. 문자가 어울리지 않아 군인 정부는 아니니 민간정부로 호칭해왔다.
실명경제 뒤에서의 아들 현철 씨의 수백개 가명계좌와 막대한 자금과 고위직 인사 주물적 소식들은 충격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실은 김정권 시기와 같이 천문학적 정경유착과 부정부패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는 시기는 또 없었을 것이다.
필자는 김정권 출범 6개월 후부터 누차에 걸쳐 그 무능과 실책, 무정견(無定見) 그리고 나라의 앞날이 몹시 암울함을 언론매체를 통해 경고했다. 그러나 기고만장, 교만에 찬 그들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였다. 김정권은 「인사는 만사이다」라는 슬로건 출발로 인지를 높였다. 그러나 필자는 얼마 안가 그의 인사행태를 보며 김정권의「인사는 만사휴애(萬事休埃)」로 표현 기고했다. 그런 인사는 만사를 끝장낸다고 했다. 감투는 있는 대로 간신들과 끼리끼리의 몫이 되었다.
먼저 통일 안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국제사회에서 외교는 주권을 상실했다. 공무원은 복지부동이 되어 수백 명의 생명이 떼죽음을 당하는 대 참사가 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속출했다.
국정은 밀실에서 끼리끼리의 차지였고 국고는 탕진됐다. 여당인 신한국당은 엉망이 되었다. 드디어 김대통령은 자의인지 타의인지 당에서 쫓겨났다. 정부는 여당 없는 정부로 전락했고 정치, 경제민생의 혼란과 공백을 맞아 국민들만 도탄에 빠졌다. 정당정치를 요체로 하는 민주국가의 변괴였다.
드디어 국가의 경제파탄이 세계만방에 노출됐다. 독재자와 인권탄압자로 국내외에서 비난받던 박정희대통령은 경제적 실적 때문에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물론 현 김영삼 정권이 군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공정한 선거 풍토를 조성한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전철 밟지 말아야
새 대통령은 이런 전철을 다시는 밟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천 년대를 태동시키는 세계사적 흐름을 투시하는 형안과 지혜와 용기가 요구된다. 김당선자의 탈지방색 인사 의지와 행정개혁 의지 등은 좋은 징조로 보인다.
이제 정경유착, 나눠먹기, 부정부패, 뇌물, 지방색. 착취 등으로 일구어낸 경제 발전은 끝장나고 있으며 하루속히 끝장내야 한다. 세계 권위 있는 언론은 지금 저간의 우리 경제 번영을 빚더미 위에 선 피라미드에 비교, 비웃는다. 때문에 이런 식의 경제인, 정치인, 기업인들이 당시 정치와 경제, 기업을 좌지우지해선 안 된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경제흐름속에서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경제운영으로 살아남고 번영해야 한다. 세계 경제 속에서 앞서거나 적어도 대등한 입장에 서야 한다. 특히 기술 개발과 운영 면에서 그렇다. 이 점에 중점을 둘 때 구조 조정, 정리해고 등을 단행치 않을 수 없는 형편인 것 같다. 이것은 또한 IMF의 강력한 요구로 알고 있다.
다만 우리는 다 같이 살아야 하기 때문에 고용 보험, 새로운 일자리 창출 등을 대대적으로 확대해 실직자들의 생계를 유지시켜주어야 한다. 이 점에서 종교도 큰 몫을 해야 한다. 지금 새 정부에 종교도 큰 몫을 해야 한다. 지금 새 정부에 화급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국제적 믿음 회복이며 그것에 바탕한 외자 도입이다.
이번 선거는 이변이었다. 60%는 3김 청산에 찬성했고 40%는 3김 연장에 찬성한 셈인데도 40%가 승리했다. 그것도 생각해보면 김당선자의 정치적 승리였다. 상대당은 적전 분열을 일삼았다.
이제 새 정권은 국회의 여소야대까지 큰 부담을 안고 출발한다. 김당선자는 가톨릭 신자로서의 진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니 사적(私的) 믿음과 공적(公的) 믿음의 회복이다. 우선 정치적, 외교적, 경제적, 문화적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국제적 믿음을 회복하여야 한다.
신뢰회복 첫 걸음부터
믿음의 근본은 진실이다. 믿음의 원천은 사람의 진실 된 마음이며「나는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습니다」가 그 뿌리이다. 가족이 친구가, 사제(師弟)가, 국민과 정부가, 노사가 진실에 근거해 서로를 믿는다. 이런 믿음 위에 건설된 사회라야 국제사회도 믿어준다. 우리 사회는 국민과 정부, 노사가 서로를 믿지 않는 풍토로 차 있다. 국제 사회에 그런 우리를 믿어달라는 것은 무리이다.
진실과 믿음에서는 희망과 용기, 분발이 샘솟는다. 지금 국민은 불안하다. 그 많은 도산과 실업군(群)은 어찌할 것인가. 수입은 줄어만 가는데 물가는 치솟는다. 어떻게 생활을 꾸려갈 것인가. 희망을 주어야 한다.
제2차 대전 후 구라파 천지가 잿더미로 변해 지하철 땅 속 광장에서 수삼 년을 살고도 인류 미증유의 경제번영을 일으키는데 중요한 정신적 역할을 한 것은 그리스도교의 믿음에 바탕한 희망의 철학, 희망의 신학이었다. 지금 우리네 전통적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
정(情)과 합리성의 문제이다. 이 두 요인은 인간 삶의 근본이다. 우리는 정실(情實) 일변도로 치닫다 파국을 맞았기에 지금 우리는 이 점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의 필요에 몰리고 있다. 지금 인류는 하나가 되어 가며 치열한 경쟁 속에 있다. 새로운 경제, 정치, 문화 질서의 시대가 도래하는 냉혹한 국제 사회에서 정(情)은 합리성에 의해 재조명될 수밖에 없다.
무엇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문제이다. 근원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 경제 파탄 위기도 잘못된 인간성 때문이다. 사실 모든 것은 인간이 하며 인간을 위해 하는 것이다. 우리네와 같이 인간성 파괴가 암처럼 온 사회에 퍼져 있는 곳에서는 인간성 회복이 모든 면에서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이 점에서 또 다시 실패한다면 IMF시대를 끝내도 결국 다시 경제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질 위험이 크다.
“인간우선” 잊지 말기를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계를 비롯해 각 급 학교 때로는 가정에 이르기까지 인간성 상실이 극에 달한 느낌이다. 초등학교에까지 폭력 문제로 경찰과 검찰이 깊이 개입해야 한다는 것은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가 잘못되어도 학교 교육이 그것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정상이다. 진실과 믿음과 희망에서 진정한 사랑이 싹튼다.
이런 바탕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희생 강요는 일과성 구호나 위선, 기만으로 일관한다. 지금 이 땅에서는 이런 희생이 정치 지도자와 경제 지도자를 비롯해 각계각층 지도자들에게 절체절명의 과제로 다가온다. 무엇보다도 종교의 솔선수범이 요청된다.
이 땅에 종교 인구는 절대다수라 할 만큼 많고 대통령을 위시해 정치, 경제, 기업, 사회 모든 분야에 종교인이 넘치는데도 부정과 부패, 사치와 낭비로 국가 경제가 파탄에까지 이르렀다. 종교들의 할 바를 못 다했다는 자책감이 앞서야 한다. 지금은 말보다도 실천이 중요하다.
여러 해전 파리에서 받은 충격이다. 파리교구장 추기경을 비좁은 지하철에서 한 선교가 신부가 만났다. 추기경은 비서도 없이 허름한 손가방 하나를 들고 있었다. 사유인즉 낡은 중고차를 손수 운전하고 다녔는데 고장이 잦아 공장에 보냈다는 것이다.
이런 광경은 흔히 있는 일이라고 했다. 많은 성직자들도 검소와 절약, 청빈 생활을 하기에 가톨릭교회는 불란서 국민의 정신적 지주인 것이다. 이 땅에서도 종교로부터 정직과 성실, 근검절약의 새로운 바람이 사회 전체에 미쳐야 할 시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주교님이 친히 장을 보아다가 자취를 하신다니 앞날이 매우 밝다.
끝으로 새 대통령의 지도력에 하느님의 크나큰 축복이 내리시기를 온 국민을 위해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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