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연애인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연예인의 자살은 모방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한국사회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가. 이런 분위기에서는 경제적 성장도, 지적 수준의 향상도 의미가 없다.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고, 자살이 만연하는 나라에서 ‘인간 자아 실현’에 대해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자살은 십계명의 제 5계인 ‘사람을 죽이지 말라’라는 계명을 위배하는 행위다. 더 나아가 제1계인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라’라는 계명도 위배하는 대죄(大罪)다. 하느님의 창조력만이 생명에 대한 지배권을 갖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끊는 것은 하느님의 주재권(主宰權)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리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인간은 타인의 생명을 존중해야 할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명을 지키고 유지해야 할 의무를 진다. 자기의 생명을 지킬 의무는 건강, 육체의 완전함, 지체(肢體)의 완전함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조달할 의무까지도 포함한다. 즉 자신의 생명을 끊는 자살 행위가 대죄임과 같이 자신의 생명을 죽음 앞에 방치하는 행위도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바꿔 말하면 자기의 건강유지와 생명의 보전을 위해 인간은 모든 정당한 수단을 사용할 권리를 가진다.
물론 교회는 중한 정신 장애나 시련, 고통 또는 고문으로 겪는 불안이나 극심한 두려움은 자살자의 책임을 경감시킬 수 있다고 가르친다. 더 나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영구한 구원에 대해서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만이 아시는 길을 통해서 그들에게 구원에 필요한 회개의 기회를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자기 생명을 끊어버린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인간은 저마다 자기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 앞에서 자기 생명에 책임을 져야 한다. 생명의 최고 주권자는 하느님이다. 우리는 생명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 하느님의 영광과 우리 영혼의 구원을 위해 보존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생명의 관리자이지 소유주가 아니다.
내 생명이 내 것이 아니다. 게다가 자살은 자기 사랑에도 어긋난다. 동시에 자살은 이웃 사랑도 어기는 것이다. 자살은 우리가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가정, 국가, 인류 사회와 맺은 연대 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지금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고통은 피한다고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승화시켜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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