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덕행이 회장에게 가장 요긴할꼬. 제1은 「신덕」이라. 이는 곧 온전한 영신과 온전한 마음으로 성교도리를 믿으며 온갖 일을 천주의 거룩하신 의향과 성교회의 신덕도리대로 판단하고 자신의 모든 행위를 초성한분에게 돌려 보낼지니라』
1920년대 한국교회 회장들의 필독서 「회장직분」가운데 회장이 닦을 덕행의 한 부분이 바로 위의 내용이다. 「회장직분」은 서울교구 최루스 신부가 저술하고 당시 서울교구장 뮈텔 민 대주교가 감수, 반포한 책으로 평신도 회장들의 「교과서」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회장직분은 회장들이 갖추어야 할 덕행을 모두 여섯가지로 제시했는데 「열심」이 두번째, 「지덕」이 세번째 덕행이었다. 「열심」편을 잠깐 보면 『예사 교우와 같이 자기 영혼이나 제 집안사람의 영혼만 돌아볼 것이 아니라 공소의 다른 사람의 영혼과 냉담자, 외교인일지라도 천당에로 이끌 마음을 두고 항상 구하며 힘쓸 것』을 촉구하고 있다.
최근 한국 순교자현양위원회가 현대어로 번역(?)하면서 새롭게 눈길을 끌고 있는 「회장직분」을 보고 있노라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이른바 평신도 지도자급에 속하는 「회장」(공소회장 포함)들이 갖추어야 할 신앙적, 인간적 덕목을 조목조목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잘 짜여진 교과서와도 같은 「회장직분」은 회장이 갖추어야할 덕목과 함께 알아야할 도리도 꼼꼼히 담고있다. 교우제도, 칠성사 그리고 성당 성회(聖會)나 (物), 전교 등 제반분야에까지 가르침이 담겨져 있다.
각종 신심단체의 정신과 활동, 성물에 대한 의미와 가치, 공소제도, 주일파공, 대 소죄, 심지어 주교나 신부의 영접부분에 이르기까지 소상히 제시한 회장직분을 보고 있노라면 당시 회장들이 맡아야할 삶의 무게가 어떠했는가 짐작케 해주고 있다.
그뿐인가. 당시 회장들은 교회 안팎으로 명실상부한 평신도 지도자로 살아가도록 요청받았다. 교회 안에서 뿐만 아니라 세상속에서, 즉 말과 행실로써 신앙을 증거하는 것이 평신도 회장들이 첫째가는 덕목이었다.
「회장직분」이 나온 때로부터 무려 80여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당시에 비해 우리 교회는 「이루 말할 수도 없이」커졌다. 신자수 본당수 성직자수 등 등 교회를 구성하는 제반 요소들이 수십배 또는 수백배 이상 커지고 늘어났다.
교회가 커진만큼 공소회장을 포함한 「평신도 회장」들이 어마어마한 수로 늘어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사목지침에 따라 명명되고 수행되어야할 본당 회장들의 구성이 여러가지 이유로 교구마다 본당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본당의 총회장, 사목회장을 비롯 각 단체장들의 숫자 역시 교회의 성장율에 따라 정비례로 늘어났다.
96년말 현재 전국의 본당과 공소를 합해 모두 2300여개. 본당과 공소회장을 한명으로 계산할 경우 역시 2300여명에 불과하지만 교구와 본당에 산재한 각종 단체들의 장(長)까지를 포함시킬 때 회장이라 불리우는 신자들의 수는 계산조차 힘들 지경이다.
한국교회 안에서 회장이라는 직분이 늘어난 것은 지금부터 불과 30여년 동안이라 생각된다. 한구교회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늘어난 회장들, 그 회장들의 땀과 노고가 한국교회 성장에 견인차 였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큰 것도 사실이다. 세계 교회도 주목하고 또 우리 스스로도 대견할 만큼 성장한 한국교회, 그속에서 밑거름이 되어온 평신도들의 역할이 조금은 정체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평신도 지도자로서 당시 회장들이 갈고 닦아야 했던 덕목들이 오늘의 평신도들에게 그대로 적용되기는 물론 어렵다. 시대와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어도 결코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증거하는 삶」이라 생각된다. 교회가 가르치는 것을 먼저 잘 배우고 그 배운 것을 삶으로 사는 것일 것이다. 평신도 회장들이라면 더욱이나 그렇다.
스스로 잘 살뿐만 아니라 신앙의 형제들과, 세상의 이웃들과 더불어 구현하는 증거하는 삶, 그것이야말로 「회장직분」으로부터 오늘의 우리 평신도 회장들이 되새겨야할 교훈이 아닐까 싶다.
『회장의 직분을 맡은 것은 높은 벼슬을 함이 아니요 또 무슨 세상 이익을 받게 하는 것도 아니라 다만 많은 수고와 거정과 일거리가 생기는 책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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