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보상운동, 일본의 강압에 의해서 빚진 1300만원을 전국민들의 금연 등 근검절약으로 갚자는 애국운동이었다.
1907년에 일어난 이 애국운동은 한일합방 후 수면 위에서 사라졌다가 3·1운동 직후부터는 물산장려운동으로 해방 후에는 국산품애용운동으로 그 생명력을 이어오다 또 하나의 국치 IMF를 맞으면서 신국채보상운동 혹은 제2국채보상운동 등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이 국채보상운동에서 또 하나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국채보상운동의 주창자가 다름아닌 열심한 신자였던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였다는 점이다.
국채보상운동이 신자에 의해서 시작됐다는 것은 1909년에 일어난 안중근(도마) 의사의 저격과 더불어 우리 천주교인들이 주동이 된 최초의 애국운동이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구한말 그리고 일제강점 시기의 우리교회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오랜 박해를 벗어나 막 자리잡기 시작한 교계제도와 민족의 아픔 속에서 교도권과 민족운동 사이의 갈증이 심했고 그 와중에서 우리 천주교회가 애국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음은 주지의 사실이거니와 부끄러운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중에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은 당시 신자들의 애국정신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대구대교구가 매일신문사(사장=김부기 신부) 주관으로 국채보상운동의 발의 주창자인 서상돈을 기념하는 「서상돈 기념상」을 제정하고 아울러 건전한 소비운동, 저축증대운동 등의 경제 살리기 운동의 전개를 펼쳐 나갈 것이라는 소식이다.
크게 환영하는 바이며 새로운 범국민운동으로 확산되어 나가길 바란다.
서상돈 기념상의 제정은 세상을 향해 열린 교회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선교 3세기를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 교회는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선교율은 갈수록 둔화되고 젊은이들은 교회를 등지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그동안 한국교회가 외형적 성장과 신자들끼리 똘똘 뭉치는 동아리 형태 속에서 안주해온 것도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교회는 세상 속을 헤쳐가는 순례의 여정 속에 있다. 성당 옆에는 빵집도 있고 술집도 있으며 성당 옆 지하철 역사 안에는 오늘도 추위에 떨고 있는 노숙자들이 있다.
그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는, 시대의 징표에 응답하지 않고는 교회는 현대사회 안에서 게토화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서상돈 기념상」이 위대한 한 신앙인을 추모하는 상이 아니라 세상에 열린 교회의 한 단면이길 바라고 세상 속 순례공동체로서 세상에 육화하는 교회의 한 모습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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