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운명이나 팔자를 신봉하는 사람이 예상외로 많다. 그들은 개인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자신의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가톨릭 신자 중에도 간혹 자신의 어려움을 하느님께 호소하지 않고, 무당이나 점쟁이에게 물어 보거나 심지어 종교를 버리는 경우도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운명도 생각에 따라 바뀌고, 팔자도 자기 노력에 따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생각에 따라 의식과 태도가 달라지고, 의식과 태도가 바뀌면 행동과 습관이 달라지고, 행동과 습관이 달라지면 그 결과물인 운명과 팔자도 바뀐다는 것이 현대 심리학자들의 정설이다.
나의 삶을 뒤돌아보니 스스로 ‘생각’을 잘못하여 부끄러운 일도 많고, 생각이나 판단을 잘하여 성취한 일도 더러 있다. 나는 4년 전 대학 총장 선거에 출마하여 상당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낙선하고 말았다. 그로 인해 나는 한동안 구성원들에 대한 불신과 분노, 적개심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나는 연구실 문을 걸어 잠그고 나의 울분을 주님께 호소하는 길밖에 없었다. 주님께서는 먼저 마음에 위로와 평화를 주시고, ‘교수직을 가진 것’에 감사하라는 통찰력까지 주셨다. 그 후 나는 마음속의 어두운 구름을 말끔히 걷어내고 ‘생각’을 바꾸어 교수 본업에만 충실하였다. 그 결과 제 작년에 이어 올해 나의 두 권의 연구 저서가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 도서’로 선정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대학 후배 한 사람은 제법 큰 사업을 하다 완전히 실패하였다. 사업의 실패는 본인만 망한 것이 아니고 그의 형님 재산까지 모두 날려버렸다. 그는 마지막 남은 헌 봉고차 한 대를 몰고 서울로 도주하는 길에 ‘자살’까지 시도하였다. 하지만 그는 사랑하는 딸의 애원하는 모습이 눈에 어른거려 ‘살자’고 생각을 고쳐먹었던 것이다. 그는 이를 악물고 노력하여 중국뿐 아니라 미국에도 사업장을 가진 상당히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물론 그것은 그의 노력뿐 아니라 오랜 냉담을 청산하고 본당에 나가 하느님께 도움을 청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러 해 전 그의 화려한 중국 공장 개업식에 초청받아 환대를 받고 돌아온 기억이 생생하다.
이처럼 생각하기에 따라 인생의 행로는 달라진다. 앞서의 ‘자살’이라는 말도 글자만 바꾸면 ‘살자’가 되니 말이다. 어떤 사람은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아 있는데도 물이 없다고 걱정하고, 주변에는 건강한데도 암에 걸리까봐 노심초사하는 사람도 있다. 어둡고 부질없는 생각이 항상 그를 괴롭히는 것이다. 영어에는 ‘아무데도 없다’는 ‘nowhere’라는 단어가 있다. 이를 띄어 읽으면 ‘여기에 있다’는 ‘now here’가 된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데 부정적 비관적 체념적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 낙관적 희망적으로 보아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간혹 신자들 중에는 모든 것은 전지전능한 하느님께서 알고 점지하시고, 능력까지 발휘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만 하면 그분께서 다 이루어 주신다고 생각한다. 이것 또한 아주 잘못된 생각이며, 일종의 종교적 운명론과 다를 바 없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도 먼저 자기 일을 다 한 후 하느님의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고귀한 탈렌트와 ‘자유 의지’를 통해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세상일에 땀 흘려야 한다.
그러면 우리 가톨릭 신자는 어떠한 생각을 하고, 어떻게 생활하여 할 것인가? 먼저 우리 신자들은 세상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잘 성찰하여야 한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대로 불륜, 방탕, 만취, 우상숭배, 적개심, 분쟁, 시기, 격분, 이기심, 분열, 분파, 질투라는 육적이고 본능적인 생각을 버리고, 성령의 열매인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오유, 절제(갈라 5,17-22)라는 영적인 생각으로 보충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 신자들도 역시 생각 바꾸기가 그리 쉽지 않고, 더구나 자구적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육적인 존재인 우리는 타성에 따라 살아가기 쉽고, 영적인 하느님을 생각하는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깨어서 우리의 보호자이신 성령께 도움을 청해야 한다. 우리는 하루의 생활 중 세상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어 주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차츰 늘려가야 한다. 묵상은 하느님에 대한 생각이며, 기도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대화이며, 미사는 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거룩한 시간이다. 우리가 주의 말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고 실천할 때 우리의 운명도 주님께서 축복하시는 모습으로 바뀔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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