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그리스도교에 대한 유일한 불만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주님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 살아가려 진정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죤 프란시크 카바나, 「문화적 저항의 영성」에서)
2000년전, 저 예수의 시대보다도 더 극명하게 긴박하고 가증스런 시대! 나는 이렇게 우리 시대를 이야기 하고 싶다.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할 소비 자본주의의 횡포앞에, 경제개발·상업화의 논리앞에, 자유의 실현이라는 미명으로 인간을 압살파괴하는 척박한 문화의 횡포앞에 우리는 속수무책 허둥거리고 있다. 아니 우리 교회마저 이미 철저히 매몰되어 왔던 것은 나일까. 그리하여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도 느끼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더러운 피의 수혈로 영욕을 함께 해온 대가, 우리는 지금 전대미문의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스도마저 이땅에서는 또다른 공허함과 맹목성의 대명사로 둔갑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리석고 비겁한 우리들로 인하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나 명백한 길, 너무나 선명한 길 어쩌면 그리스도인에게는 최소한 모든 것의 대한(代案)일 그리스도는 내팽개쳐버리고 …. 조직 관리확대, 교회법 적용, 신자 재생산(?). 정녕 기초가 의심스럽다. 참혹한 절망 속에서 차라리 희망없이도 사랑하기를 절규해야 할 이 한복판에서 …무엇이 먼저란 말인가. 무엇이 본질적인가 곰곰히 따져보자. 종교학적으로도, 사이비 종교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와 역사를 내팽개친 가증스런 신앙을 일컫는 또 다른 말일 뿐이다. 얼마든지 우리의 신앙마저 사이비 종교가 될 수 있다는 것, 명심할 일이다. 사제생활 10년, 진짜 예수를 만나고 『사목』이라는 용어마저 내던져 버렸다는 어떤 시골 사제의 고백은 그래서 눈물나도록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착잡하게 반문하고 고통스럽게 대답하게 된다. 과연,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한다는 것은 과연 어떠한 삶일까?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연, 이 땅에서는 무엇이 진정한 의미의 순교의 삶일까? 무엇이 진정한 의미의 선교일까? 무엇이 진정 이 땅에서 행해져야 할 토착화 작업일까? 교의적 해석, 신앙고백적 차원은 차치하고라도, 그리스도를 올바로 증거하지는 못할망정 한 인간으로 생생하게 살았던 그의 역사적, 사회적 맥마저 놓쳐 버리는 무지로 말미암아 예수를 오히려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소름끼치는 과오를 번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가장 비인간적인 상황이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요청으로 절망의 무게만큼이나 희망으로 육박해오는 것처럼, 예수를 예수이게 하는 의무, 「거룩한 명령」으로 우리에게 육박해 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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