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문화대사 벨기에 소년 합창단 ‘칸타테 도미노’가 지난 7월 한국공연을 가졌지요. 저는 분당요한성당에서 즐거움을 만끽했습니다. 성전 정면 벽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 팔 좍 벌리고 서 계시면서, 단상에서는 그랜드 피아노가 떡 버티고 서서, 대성당 바닥에서는 군중들이 좌석을 꽉 메우고 앉아서, 설레는 마음으로 그들의 입장을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단원들이 등장합니다. 환영의 박수 속에 어린이, 소년, 청년, 장년, 골고루 서른여섯 명의 합창단원이 줄 맞춰 섭니다. 제 눈에는 소년 합창단이 아니라 대가족 합창단이었어요. 1959년 미하엘 헤이스 신부에 의해 창단되었고, 벨기에의 성 마틴 음악학교 정규 학생들과 졸업생으로 구성되었다니 그럴 수밖에요. 맨 뒷줄에 서 있는 어른 몇은 아무리 봐도 40은 넘어 보이고, 맨 앞줄에 선 어린이 몇은 아무리 봐도 열 살도 안 돼 보입니다. 가운데 줄에는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흑인 한 사람도 보이고, 동양인 같은 사람도 보입니다. 금세 지구촌 한 가족임이 실감되었지요.
곧 이어 젊은 남성 지휘자와 여성 반주자가 나왔습니다. 청중의 환호 속에 인사가 끝나자 앞줄에서 한 어린이가 한 발 앞으로 나옵니다. 말없이 쪽지를 펴 들더니 천천히 또박또박 읽습니다. “안 녕 하 세 요? 사 람 이 많 아 서 너 무 좋 아 요. 즐 거 운 시 간 되 세 요. 감 사 합 니 다.” 짝짝짝…. 함박웃음 띠고 박수를 쳐대는 청중들 모습 보이시나요?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헨델, 모차르트, 하이든…. 하느님 찬양의 고전 미사곡들이 거룩하게, 달콤하게 영혼을 파고듭니다. 때로는 미풍처럼, 때로는 강풍처럼, 때로는 어린이만, 때로는 장년들만, 때로는 다 함께, 때로는 혼자서만.
솔리스트의 노래는 더욱 아름답습니다. 팝페라 가수의 음색입니다. 그 음에 매료된 채 붕 떠오르다가 주인공이 누굴까 궁금해 입모습을 살펴봅니다. 아, 찾았어요. 아까 그 동양인처럼 보이던 청년입니다. 그렇구나. 왠지 더 정답고 반갑습니다.
중간에 잠시 쉬고 나자, 아이가 나와서 또 쪽지를 보고 천천히 읽습니다. “계속해서 아름다운 노래를 할게요.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도 귀여워 뛰어나가 안아 주고 싶습니다. 저의 그런 마음을 아시는 듯, 정면에 두 팔 벌리고 서 계신 주님께서 빙그레 웃으십니다.
후반에도 솔리스트의 노래가 나왔습니다. 더 높고 가녀리고 애틋합니다. 완전히 여성 소프라노입니다. 그 소리를 따라 한없이 천상으로 올라가다가 또 누군가 궁금해 주인공을 찾았지요. 눈길을 이리저리 돌려보니, 어머나, 바로 그 훤칠한 흑인 청년입니다. 와, 저렇게 고운 소리를! 어찌나 소리가 청아한지, 갑자기 그 청년의 까만 얼굴이 꽃미남으로 보였습니다.
제가 반한 사람은 또 있어요. 젊고 날씬하고, 귀족처럼 깨끗해 보이는 지휘자! 온 몸으로 춤추듯 얼마나 멋지게 지휘를 하는지. 그의 이름은 다비드 드 헤이스트. 1984년생이랍니다. 2008년, 창립자 신부님이 선종하신 뒤 새 지휘자로 임명 받아 바티칸에서 교황님을 모시고 공연하는 등 세계를 누비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지요.
한 시간 반이 훌쩍 가버렸습니다. 박수박수박수! 앙코르송은 헨델의 메시아 입니다. 우렁찬 함성 할렐루야 소리 하늘에 닿을 듯. 곡이 끝나자 또 박수박수박수! 이번에는 ‘나의 살던 고향’입니다. 젊은 귀족이 돌아서서 지휘봉을 흔들고 온 청중은 신나게 따라 부릅니다. 그럭저럭 밤 10시가 가까워집니다. 어린이들이 두 시간이나 서 있는 게 무리가 아닐까? 저는 애가 타서 그만 굿바이를 하고 싶은데 청중은 계속 박수를 쳐댑니다. 그들이 져줍니다. 이번에는 ‘아리랑’! 너무나 구슬프게 잘도 부릅니다. 청중도 함께 부릅니다. 오, 음악이라는 만민 공통어를 주신 우리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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