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광복절보다 더 기쁜 날이 있을까요? 게다가 우리 신자들에겐 또 다른 기쁨의 날, 성모 승천 대축일!
교회가 정한 성모 승천 대축일이 우리 민족의 광복절과 일치하고, 우리 교회가 성모님을 주보성인으로 모시게 된 것은 주님의 각별한 섭리이시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 좋은 날, 또 하나의 해방, 북한 공산주의로부터의 해방을 염원하며 성모님께 매달려 보고 싶습니다.
한국동란 발발 60주년! 지난 6월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연일 매스컴에서 당시 처절했던 상황이 보도되자 해묵은 상처가 따끔따끔 아려왔습니다. 60년 전 이맘때, 저는 열한 살의 아이로 조용한 남쪽 도시 전주에서 행복하게 살았지요.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께서 오빠만 데리고 어딘가로 급히 떠나시고, 며칠 뒤 공산군이 들어와 저희 집을 빼앗았습니다. 대문에는 느닷없이 ‘전주지방법원’ 간판이 붙고 붉은 깃발이 높이 걸려 펄럭대었지요. 순식간에 그들이 방을 다 차지하고 우리에게 허락한 방은 딱 한 칸. 그 속에서 어머니와 세 자매, 그리고 조부님까지 옹색하게 살았습니다.
그들은 장롱, 벽장, 다락문 등에 딱지를 붙여 놓고 손대지 못하게 하더니, 트럭으로 그 짐들을 실어 내갔습니다. 양식도 물론 그들 것이 되었지요. 배가 고파진 저는 우리 쌀을 씻는 그들 곁에 서 있다가 재치 있게 뜨물을 받아 끓여 먹으며 허기를 채웠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행방을 대라고 늙으신 조부님께 온갖 포악을 퍼붓고, 우리 목에 칼을 들이대며 협박해 매일의 삶은 생지옥이었습니다.
한편 시골로 피신한 아버지는 인민군에게 발각이 되고, 마을에서 붙들린 몇 명의 양민들과 함께 새끼줄에 묶여 전주로 이송되던 중 총살을 당하셨습니다. 초대 전주시장을 지냈다는 죄목이었지요. 바로 그날, 조부님께서는 꿈자리가 사납다며 친척집을 향해 떠나셨습니다. 폭염에 폭격소리까지 귀청을 찔러대는 그 7월, 50리 길을 걸어 그곳에 도착한 조부님은 아들이 당한 것을 알고 손자와 함께 인근 산을 뒤져 피범벅으로 버려진 시체를 찾아 산자락에 묻어주고 오셨습니다.
수복 후, 정부에서는 동사무소 단위로 대여섯 명의 공안위원을 뽑아 공산군 색출에 나섰습니다. 스무 살 오빠가 공안위원으로 뽑혔지요. 어머니는 회의에 참석하는 아들에게 신신당부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공산군과 합세하여 우리에게 모질게 굴었다만 복수는 절대 안 된다. 혹여 너 때문에 양민증을 못 얻는 사람은 없도록 해라.”
당시엔 위원 중 한 사람만 거부해도 ‘양민증’을 받을 수 없었고, 그 양민증이 없으면 아무데도 통행할 수가 없었지요. 그렇게 용서의 본을 보인 어머니였지만 워낙 큰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4년 뒤 세상을 뜨셨습니다.
갑자기 고아가 된 저는 책만 읽고 살면서, 영혼이 너무도 허허로워 종교에 관심을 가졌지요. 고등학교 때부터 예배당으로 원불교당으로 전전하다가 대학 졸업 후, 성당 뜰에서 ‘맨발의 성모님’을 만나 실비아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때부터 하느님을 아버지로,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열심히 살았더니 교사도 되고 작가도 되었답니다.
이제 산전수전 다 겪고 종심(從心)의 나이에 든 저는 매일의 삶이 초록빛 축복인 듯합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입니까? 느닷없이 천안함 사태가 일어나 유족과 함께 눈물짓게 하더니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잠결에도 꿈결에도 부르짖습니다. “전쟁은 안 돼요, 보복은 안 돼요!”
저는 이 일만은 하느님께서 풀어주셔야 할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에 여섯 차례나 발현하시어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를 예언하시며 묵주기도를 권장하신 성모님! 아, 저희가 몇 만 단의 묵주기도를 더 드려야 북한 공산주의가 무너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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