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비우란 말은 요즈음 흔히 사용되고 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욕심을 버려라 혹은 헛된 생각을 버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최근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옷 로비 사건도 마음을 비우지 못하여 생긴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IMF시기에 허리끈을 졸라매고 어렵게 사는데 정부 고관들과 재벌 부인들이 수천만원대의 고급 옷을 로비로 사용한다는 것은 국민정서상 도저치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이원론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말 두면 종 두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는 속담도 있다.
남의 밥의 콩이 더 크게 보인다는 말도 있다. 이처럼 항상 욕심이 따르게 마련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욕심은 필요하다. 문제는 지나친 과욕이 금물이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의 인간의 이원론이 생각난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를 가졌는 바 육체는 인간을 타락시키고 영혼은 인간을 상승시킨다는 것이다. 육체는 동물적인 면이며 영혼은 천사적인 면이다. 인간의 정신은 하느님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고 육체는 악마를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정신은 좋은 것을 추구하면서 하느님께 상승하려하나 육체는 욕망을 추구하고 안이함을 택하면서 인간을 악마 편으로 하락시킨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경향 사이에서 인간은 항상 갈등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항상 정신적인 면을 추구하면서 욕심을 버리고 안이하게 살려는 경향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보들레르의 이러한 관점은 복음정신과 일치한다.
인간은 항상 두 가지 경향에서 갈등을 느끼면서 살아가게 마련이다. 때에 따라서는 이 두 가지 경향 사이에서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되며, 이러한 결정이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기도 한다.
나도 작년 1학기 동안 학교 내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에 마음을 비우고 심사숙고하여 중대한 결정은 한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우리 대학교가 안정되고 우리편에 선 사람들이 살게 되었다.
당시 우리 대학교에서는 소위 나를 중심으로 한 개혁파와 반대편에 선 수구파가 일부 있었는데 심한 갈등을 겪었다.
내편에 선 하느님
97년 12월에 교수협의회에서 내가 총장으로 선출되어 작년 3월부터 총장대행으로 집무했다. 다만 4월 10일에 개최될 예정이던 재단이사회의 선임만 남겨둔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구재단에서 나로서는 도저히 수락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였기 때문에 나는 몹시 고민하면서 심한 갈등을 느꼈다. 당시 재단이사회 총장승인을 앞두고 재단의 요구를 거부하면 내가 재단이사회에서 총장승인이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한 일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재단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많은 우리 대학 구성원들과 등지게 되고 약속을 어기게 되며 정의에 어긋나게 된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위 대학 고문 변호사 등 많은 고문들의 자문도 받았으며 기도도 많이 하고 성체조배도 많이 했다. 그 결과 나는 이렇게 결심했다. 옳은 일을 택하자, 단 하루를 하더라도 우리 대학 구성원들로부터 존경받는 총장이 되자. 총장직에 연연하지 말고 마음을 비우자!
결과는 내가 예상한 대로였다. 내가 총장으로 선임되지 못하고 다른 분이 총장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대학 전체 구성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면서 구재단에 맞서고 학교에 교직원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어 학교를 수습하려고 노력했다.
대부분의 학교 구성원들이 나를 옹호했다. 이러한 와중에 교육부 종합감사가 실시되어 학교가 옳다는 판정을 내리고 구재단 이사들은 해임되고 임시 이사들이 파견되었다.
작년 8월 24일 교육부에서 파견된 임시이사회에서 내가 정식 총장으로의 선임도 작년 2학기 때부터는 쉽게 학교가 안정되었가. 그래서 나와 내편에 선 분들은 살게되었다. 많은 분들이 사필귀정이라고 한다.
당신 뜻대로 이끄소서
작년 한 학기 동안 어려운 고비가 많았다. 그때마다 하느님은 우리 편에 서서 도와 주셨다. 어려운 과정에 갑자기 넘기 힘든 산이 장애물로 여러번 가로 막았다. 그때마다 중지를 모아서 순리대로 올바르게 처리하려고 노력했다. 나의 가장 친근한 대화의 상대자는 예수 그리스도였다. 주님은 나에게 많은 의견과 희망과 힘을 주셨다.
하느님은 실제 살아계시면서 마음을 비우고 정의로운 사람편에 서 계심을 확신하게 되었다. 한치 앞을 못보는 우리에게 험난한 산이 앞을 가로막을 때 막막한 생각이 든다.
그럴 때에는 성체 앞에 조용히 기도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 잠잠히 타이르시고 의견과 힘을 주신다.
주님, 우리는 너무나 이기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당신의 뜻을 헤라리지 못하고 제 멋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 이기적인 판단으로 살아가다가 많은 분들이 실패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주님, 우리 이기적인 뜻대로가 아니라 당신의 뜻대로 우리의 마음을 비우고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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