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飮酒)는 즐기지만, 가무(歌舞)는 불편해 한다. 그러다 보니 술 마시더라도 노래방에 갈 일이 별로 없다. 그렇게 노래방에 가지 않은 것이 2~3년 쯤 됐나 보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한 본당 사목회 임원들과 함께 노래방 갈 일이 생겼다.
지나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마이크를 자주 주지 않아서 조금 서운했다. 꼭 불러보고 싶었는데 못 부른 노래가 있다. ‘015B’의 1992년 음반에 수록되어 있는 ‘수필과 자동차’다.
가사에 마음을 빼앗겨 한때 즐겨 불렀던 노래다. 가사에 따르면 우리는 여류작가의 수필 한 편에 설레 할 때가 있었다. 영화의 사랑 이야기에 눈물 흘렸었다. 버스 정류장 그 아이의 한 번 눈길에 잠을 설칠 때도 있었다. 순정 만화의 주인공처럼 되고 싶어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젠 그 사람의 자동차가 무엇인지 더 궁금해 한다. 이젠 그 사람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더 궁금하다. 후렴구는 특히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우리가 이젠 없는건 옛 친구만은 아닐꺼야 / 더 큰 것을 바래도 많은 꿈마저 잊고 살지 / 우리가 이제 잃은건 작은 것만은 아닐꺼야 / 세월이 흘러갈수록 소중한 것을 잊고 살잖아~.”
한 해 두 해 세월 보내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매사에 조심스러워 진다는 점이다. 젊은이는 인생을 살얼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위험스런 살얼음 위를 성큼성큼 걷는다. 그러다 보면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지는 실수도 한다. 하지만 얻는 것이 더 많다. 기성세대들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갈 수 있다. 젊은이는 우정이 깨지는 것을, 사랑에 배반당하는 것을 체험한다. 그리고 아파한다. 하지만 바로 그 순박함 때문에 무조건적인 헌신, 손해 보는 행동이 가능하다. 젊음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신앙 안에서 젊어질 필요가 있다. 수필 한 편에 설레 할 필요가 있다. 우연히 마주한 그분의 눈길에 잠을 설칠 필요가 있다. 눈물 흘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맑게 보는 순정 만화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잃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한없이 나약해지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가 우주에 대해 아주 조금밖에 모르는 것처럼, 하느님과 그 섭리에 대해서도 아주 조금밖에 알지 못함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진정으로 강해진다. 약해져서 강해진다. 그 맑은 용기로 살얼음 위를 성큼성큼 걷자. 그럴 때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기적(마태 14,29 참조)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 맑은 믿음으로 세상의 벽을 무너트리자. 벽이 앞을 가로 막을 때마다, 예리코 성벽을 무너트린 여호수아처럼 온 힘을 다해 벽을 넘어서자. 죽을 힘 다해 나아갈 그 목적지는 하느님 품이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5).
예수도 눈물 흘렸다(요한 11,35 참조). 예수라면 앞에 앉은 사람의 자동차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아름다운 수필 한 편에 설레 할 분이다. 그런 마음 안고 걸어가야 할 길을 걸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그런 신앙인이 되어선 안 된다. 세월의 비바람 때문에 뻘겋게 녹슨 마음을 닦아내자. 세상 일로 가득 찬 마음에는 성령이 들 자리가 없다.
최근 5개월 동안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왕복 40km 거리를 자전거 출퇴근 하면서 건강을 얻었다. 하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가졌던, 책 읽는 행복을 잃었다. 내일은 자전거 잠시 쉬게 하고, 여류 작가의 수필 한 편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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