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렇게 시대가 변했을까요?
요즈음은 늦도록 짝을 못 찾은 자녀들 때문에 걱정하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남자는 좀 덜한데, 여자는 서른 넘고 마흔 넘은 아가씨들이 정말 많아요. 저도 그 대열에 끼어 항상 어깨가 무겁습니다. 잿빛 나뭇가지에 새 잎 돋아나는 봄이면 봄대로, 온 산야에 녹음 우거진 여름이면 여름대로, 금빛 은행잎 눈부신 가을이면 가을대로, 백설 분분히 흩날리는 겨울이면 겨울대로…. ‘아, 이 좋은 날 우리 막내딸 외로워서 어쩌지?’하며 어미 가슴이 먼저 아파옵니다.
유아영세를 한 헬레나는 주일학교의 모범생이었지요. 고학년이 되면서 사순절이면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미사에 참례해 우리 부부를 놀라게 하고, 1984년 시성식 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방한을 앞두고는 누구보다 기뻐하면서 교황님께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지요. 덕분에 헬레나는 당시 주한 교황대사님으로부터 답장도 받았답니다.
사랑하는 은 헬레나 양.
교황 성하께서는 교황님의 한국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헬레나 양의 편지를 받아 보신 후, 저에게 감사의 인사를 꼭 전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는 5월 6일 여의도 광장에서 거행될 한국 치명복자 103위 시성식은 교황 성하께서 김수환 추기경님 이하 모든 주교님, 신부님과 직접 공동으로 집전하실 예정입니다.
교황 성하께서는 아름다운 한국을 방문하시어 친절한 한국인을 만나게 될 5월을 무척 고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교황 성하께서는 헬레나 양의 생일이 성모성월이자 교황님께서 한국을 방문하시는 5월에 있다는 것을 아시고는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헬레나 양이 보내 준 환영의 편지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헬레나 양의 가족과 특히 헬레나 양에게 교황 성하의 축복과 감사의 기도를 전해드립니다.
- 1984년 4월 6일 Francesco Monterisi
저는 이 편지를 방한 당시의 교황님, 빨간 망토에 하얀 빵모자를 쓰시고 백만 불짜리 미소를 띠고 계시는 교황님의 예쁜 사진과 함께 액자에 담아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거실 벽에 걸어두고 가보로 모시고 있지요.
그런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이 아직도 혼자입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고 사다 주는데, 그때마다 저는 기쁨보다 미안함이 앞섭니다. 쯧쯧, 가정을 가졌으면 엄마 생각을 덜 할 텐데….
그 딸이 지난 5월 마흔 살 생일을 맞이하자 의미 있는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묵주반지를 택했지요. 원래 장신구를 즐겨하지 않아 귀걸이는 물론 목걸이도 마다하는 터라 조심스레 물었더니, 고맙게도 선선히 응낙해 주었습니다.
손가락 사이즈를 재다가 18금 묵주반지를 맞추고, 그걸 찾아다 신부님 앞에서 함께 축복을 받고, 마침내 헬레나의 손가락에 끼어진 묵주반지! 바라만 봐도 흐뭇하고 기쁩니다. 저만 기쁜 것이 아니에요. 헬레나 역시 그 반지로 하여 기쁜 일이 많답니다.
“어머, 교우시군요? 세례명이 뭐예요?” 일터에서도, 가게에서도, 유료주차장에서도,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친절을 베푼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엄마가 항상 같이 있는 것 같고, 성모님과 하느님께서 늘 함께하시면서 보호해 주시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답니다.
마치 문설주에 발라놓은 어린양의 피를 보고 재앙이 건너뛰었듯 액운이 쫓겨 가고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답니다.
아, 저도 신났어요. 탁월한 선택으로 이끌어 주신 성령님께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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