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아사세왕 수결경』에는 가난한 여인의 등불얘기가 나온다.
부처가 밤길을 가는데 수많은 등이 길을 밝혔다. 그중에는 기름이 넘치는 왕의 등불, 부자의 밝은 등불도 걸렸고 사난한 여인의 작고 보잘것 없는 등도 함께 걸렸다. 밤이 싶어지자 화려한 등불은 하나둘씩 꺼지기 시작해 빛을 잃었다. 그러나 가난한 여인이 바친 보잘 것 없는 등불은 점점 밝은 빛을 내 부처의 발길을 환히 비추었다. 참된 마음이 담긴 가난한 여인의 등불을 부처는 소중히 여겼다는 이야기다.
성서에도 이같은 예화는 적지않다.
『눈물을 흘리며 씨뿌리는자, 기뻐하며 거두어 들이리라』고 시편에 적고 있다. 올바른 정치의 근본은 무엇인가?
주님의 뜻이 물과 같아서 낮은데로 임하듯이 정치의 근본은 헐벗고 굶주린 이들의 삶 가까이에 두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풍요의 혜택을 누리며 탐욕으로 치닫는 사이, 그 그늘에 소외된 계층을 끌어안은 정치가 바른 정치의 시작이다.
얼마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민심을 잘못 헤아려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쳤다』고 했고, 크게 반성한다는 말과 함께 국민의 뜻을 하늘같이 생각하며 겸허하게 민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민초들의 마음이 민심
민심이란 무엇인가 민초(民草)들의 마음이다. 비바람 폭풍우에도 끝내 꺾이지 않고 일어서는 들풀과 같은 사람들의 소박하고 겸허한 마음이다. 탐욕과 오만이 없어 늘 주어진 일에 열중하며 감사할 줄 아는 이 땅의 서민들이다. 이렇듯 가진 것 없이 땀흘리는 다중(多衆)들도 집권층이나 지배자들이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자신들만의 성을 쌓을 때는 분노할 줄 알고 분연히 일어날 줄 안다.
우리 역사에서 농민봉기니 민란이니 하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동학혁명이 살아있는 민초들의 위대한 힘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정치는 가진 것 없고 힘없는 민초들의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다.
가난한 여인이 작고 보잘 것 없는 등을 바쳤을 때 부처의 마음처럼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어루만져 주는 정치가 민심을 헤아리는 정치다.
그러나 IMF라는 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정치는 중산층과 서민들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래서 소득불균형 현상이 심화되고, 중산층과 서민경제가 무너져 내렸다. 경제성장의 열매라는 것을 땀흘려 일한 근로자에게 되돌려주지 않고 사업주나 지배계층이 독식해 왔다.
아랫목이 뜨거워지면 그 온기가 윗목에까지 미칠 날이 머지 않았다고 서민들을 달래왔지만, 여전히 윗목은 냉골이다. 소득수준 상위 20%의 부유층은 IMF초기의 고금리와 최근 저금리에 따른 증시활황의 이익을 가장 크게 누렸다. 그러다보니 상위계층의 소비증가는 10%이상 늘어난 반면, 하위 20% 계층은 5%에 그치고 말았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전국의 1만3000여 표본을 대상으로 『IMF 전후 생활』을 비교조사한 것을 보니까, 대상자의 74%가 소득이 줄었고, 조사가구의 42%정도가 평균 1100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용차, 골프용품, 휴대폰 등 20개 사치성 품목의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5%가 증가했으며 전체 수입증가율 10.7%의 8배를 상회했다. 이같은 통계수치들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공평한 고통분담 시급
공평한 고통분담이 아니라 서민들에게 고통전담을 강요해온 것이다. 결국 양극화의 「부익부 빈익빈」을 확싱시켜 주는 것이다. 이같은 사회에선 「공동체적인 나눔의 윤리」라는 것은 실종되고 만다. 진정한 화해도 미래도 희망도 얘기할 수가 없다.
정부는 그 동안 「과거 역사와 화해를 통한 국민대화합」을 외쳐왔고, 최근에는 「국민을 하늘같이」여겨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말들이 일회용 전시행정의 홍보용 문구가 되거나 일시적인 위기탈출용 사탕발림이 되어선 안된다.
국민을 일시적으로 속일 수는 없지만 영원히 속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민심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의 정사를 이끄는 이들이여, 가난한 여인이 바치는 작고 보잘 것 없는 등불을 소중히 지켜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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