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 성월이다. 신앙인들은 이 9월 한 달 동안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어던진 장한 한국 순교 성인 성녀들을 특별히 공경하고 그 행적을 기린다. 궁극적 목적은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구원 은총에 감사하기 위해서다.
물론 순교 신심은 특별한 시기에만 고양시키는 그런 신심이 아니다. 그리스도교인은 언제나 순교할 준비를 갖추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교회헌장 42). 그럼에도 교회가 순교자 성월을 별도로 정한 것은 순교 신심만큼 신앙 쇄신에 도움을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순교 신심만큼 그리스도 신앙인의 정체성을 확인시키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순교는 이제 과거의 일이 되었다. 오늘날 신앙인들은 순교의 압박을 받지 않는다. 공기의 존재를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이 듯, 대부분 신앙인들이 신앙의 자유 역시 그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수많은 신앙선조들이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은 이제 역사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과거사가 됐다.
그렇다고 해서 순교 영성이 무의미 해지는 것은 아니다. 복음이 우리가 목숨 걸고 따라야할 지고의 가치라는 것은, 피를 불렀던 박해시대나 종교 자유가 헌법에 보장된 오늘날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순교 영성은 목숨을 내 던져야 하는 박해시대보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더 요청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용의 가면을 쓴 물질만능주의와 향락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겉으로는 진리와 평화를 말하지만, 실제 행동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대세다. 조금이라도 피해가 오는 일은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영악해지고 있다. 이 모든 것과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 십자가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래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맞닥뜨리는 숱한 유혹들은 순교의 현대적 의미를 일깨우는 칼날과 같다. 오늘날 순교는 하느님 말씀을 온전히 지키고, 세상의 칼날에 과감히 맞서 싸우는 것이다. 참된 신앙을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결국 매일 매일이 박해시대다. 성령의 이끄심과 순교성인들의 전구를 구하면서 세상의 박해를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신앙은 액세서리가 아니다. 목숨을 내어 던질 각오로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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