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70에 교수 발령을 받았다고 하면 믿어주시겠습니까? 30여 년 고등학교 교사로서의 지난 세월을 되돌아봅니다.
1980년대 급식이 없던 시절 고등학생들은 점심과 저녁 두 개씩 도시락을 싸야 했었지요. 3남매를 둔 저는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제 것까지 여섯 개를 싸고,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7시도 못 되어 집을 나섰습니다. 정규 수업 외로 아침저녁 보충이 있어, 보통 하루 예닐곱 시간씩 수업을 하고 지쳐 돌아오면 목이 쉴 대로 쉬어 아무 말도 하기가 싫었지요. 그러던 저에게 몹시도 부러운 직업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아, 대학교 교수! 새벽에 안 나가도 되고, 주당 강의도 많지 않은 그들이 신선처럼 부러웠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제 마음을 읽으신 것일까요? 나이 70에 교수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도대체 어느 곳, 무슨 대학이냐고요? 하하. 실망하지 마십시오. 분당요한성당의 어르신 대학인 ‘요한대학’입니다. 이 대학은 2001년에 문을 열어 매주목요일 마다 인근 65세 이상의 어르신 250여 분이 모여 신나게 공부하는 곳입니다. 학장과 부학장 및 8명의 담임과 20여 분의 교수님으로 운영되지요. 컴퓨터, 사진, 바둑, 영어, 일어, 중국어, 서예, 미술, 무용, 노래, 리코더, 사물놀이, 덤벨체조…. 무려 20여개의 학급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맨 첫 시간 다 같이 저로부터 40분 간 성경 말씀을 듣고 각자의 반으로 흩어져 12시까지 공부한 뒤, 성당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고 다시 공부를 시작해 3시에 끝이 납니다. 어르신들이 얼마나 즐겁게 열정적으로 공부를 하시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매년 10월에는 발표회도 있어 각자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기도 하고요.
저는 정년을 몇 년 앞두고, 새로운 천년기는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1999년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퇴직 후 맨 먼저 시작한 것이 성경공부였지요. 세례 받은 지 35년이나 된 사람이 성경 한 번 제대로 독파한 적이 없어 항상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본당에서 1년 동안 ‘성서 40주간’ 공부를 통해 말씀에 맛을 들이고, 이듬해 바로 성 바오로 딸 수도회 통신성서 교육원에 등록을 했지요. 혼자 교과서와 성경을 읽으며 매월 답안지를 작성해 우송하고, 일 년에 한 번 2박 3일의 연수를 받는 형식이었습니다. 고맙게도 아무 방해 없이 꼬박 8년의 전 과정을 마쳤습니다. 결국 9년 동안 말씀을 듣는 학생으로 살아온 것이지요. 가르치는 생활도 행복했지만 배우는 생활은 더욱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졸업식 날, 뜻하지 않은 말씀 봉사자 자격증이 주어졌어요. 저는 순간 아브라함의 아내처럼 피식 웃었습니다. 이 나이에 이걸 어디다 쓰라고? 그런데 그 자격증 때문에 2009년 정식으로 임명장을 받고 목요일마다 강단에 섭니다. 그동안 통합성경반을 운영하고자 자격증 가진 자를 보내주시라고 기도했다는데, 제가 당첨이 된 것이지요. 퇴직하자마자 성경 공부를 시키신 주님의 뜻은 참으로 오묘하지 않습니까? 덕분에 어르신들의 사랑을 과분하게 받고 있습니다. 여름 방학 중에는 뜻하지 않은 사랑의 편지도 받았답니다.
“교수님, 이 무더운 날씨에 건강하신지요? 하기 방학이 너무나 긴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그 아름다운 음성!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빨리 9월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공직에서 퇴직하셨다는 테레사님의 달콤한 연애편지는 8월 폭염을 한방에 날리고, 저에게 더욱 열심히 개강 준비를 시켰지요. 「새로 나는 성경공부」를 교재로 쓰면서 수십 쪽의 성경 말씀을 40분 안에 전해 드려야 하니, 계속 읽고 소화하느라 최소 다섯 시간은 공부하고 있답니다. 오, 부족한 저를 뽑아 당신 영광 드러내는 도구로 써 주신 주님, 찬미 받으소서.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