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억이나 되는 거액의 제작비를 들어 만든 「이재수의 난」이라는 타이틀의 영화가 전국 각지에서 상영됐고 각 신문에 논평이 실렸으며, 가톨릭신문 등 교회내의 언론지에서도 기사가 다루어졌었다. 그러기에 영화를 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신축제주민란」「신축교난」으로도 불리우는 「이재수의 난」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보고 색다른 충격을 받은 교인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제주의 역사에 어두운 사람들 가운데는 1901년에 전개된 이 민요(民擾)에 제주교회가 관련됐으며 수백명의 귀한 인명이 살상되는 참극이 벌어진 사실을 비로소 알게 돼 착찹한 생각을 느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20세기 개막년도라 할 1901년(이 해가 간지로 따져 신축년이었다)에 제주도에 두 사람의 전교 성직자가 부임한 후 개교된 제주천주교회는 이제 개교 100주년을 맞았으며 21세기의 새 천년 역사의 발전을 기약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서서 100년 전 제주에서 벌어졌던 참극이며, 민란·교난 등으로 그 역사적 성격의 해석을 달리 해온 신축교안을 다시 생각해 봄도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본보는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이원순 교수(서울대 명예교수)의 특별기고를 연재한다.
이른바 「이재수의 난」이란, 1901년 즉 신축년에 제주도에서 벌어졌던 교회·교인과 지방관·민인 간에 생겨난 갈등과 잦은 충돌이 점차 확대되어 마침내 제주성 공방의 전투가 벌어졋고 이 과정에서 수백명의 인명 살상을 초래한 난리이며 민요였다., 그 때의 민군측 지도자 가운데 가장 강성의 인물이 천인 출신의 청년 장부인 이재수였기에 이 민요를 「이재수의 난」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 호칭은 적절치 않다. 이 난에 참여한 많은 민인들을 뒷전에 두고, 지도자 한사람에게만 공과 죄를 돌리려는 영웅주의 사관에 입각한 역사인식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 난에서 그의 존재가 돋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혼자만의 역량으로 전개된 민요는 아니었다.
한편 「신축제주민란」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그러나 이에도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근세에 들어 제주도에서 멀어졌던 숱한 민란이 수탈과 토색을 일삼는 봉건관료와 지방토호를 상대로 한 민중의 반란이었기 때문이다. 이 난이 특정종교와 성직자·교인을 대상으로 한 제주 민인들의 민요였기에 종래적 어휘인 민란으로 표현할 때에는 그 역사적 성격이 흐려진다.
1901년 제주도서 벌어진 난은 천주교의 제주 포교와 관련되어 그 단서가 비롯됏으며, 천주교를 지목하고 벌어진 전투사태였던 점에서, 특정 종교와 깊이 관계된 제주도민의 난이었기에 다소 생소한 용어이기는 하나 신축년에 벌어진 대규모 교안 즉 「신축교안」이라는 호칭이 적합한 역사용어로 생각된다.
「교안」은 「박해」나 「교난」과 같이 교회측이 겪게 된 수난만을 뜻하는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종교의 문제로 말미암아 벌어지게 된 사건 ·사안을 뜻하는 역사용어인 것이다. 「교안」이라는 역사적 용어는 일찍이 근세 중국사에서 사용되어 온 역사용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말의 전통지식인들이 그들이 사는 시대의 종교적 문제로 벌어지게 된 사회적·정치적 사태를 표현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한편 한말의 사법기록이나 재판기록에서도 사용되어 온 용어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새로 조어하여 사용되는 특수용어는 아닌 것이다.
「교안」으로 표현되는 대소의 많은 사건은 국가적 결정에 의한 박해가 끝난 시기로부터 종교의 자유가 국법으로 규정·정착되는 때까지의 종교정책의 이행과도기에 지방 각지에서 벌어졌었다. 1866년 한·불조약을 통해 외국인이 「집조내지유력(執照內地遊歷)」(호조라는 정부발행의 증명서를 가지고 국내 각지를 여행할 수 있다는 약정사항) 할 수 있게 보장되고, 「교회(敎誨)」(가르침을 뜻하나, 사실상 사회적 가르침으로 전교활동을 의미한다) 활동을 펼 수 잇도록 외교적으로 약정됐다. 이 조약에 따라 정부는 국가정책으로 종교박해정책을 포기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전교활동을 법으로 보호하여야 하는 외교적 책임을 지게 된 것이다.(그러나 한·불 조약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믿는 자유 즉 「신교 자유」마저 보장한 것은 아니었다. (교의 자유는 전교만이 아니라 믿는 이의 신교의 자유까지 아울러 인정돼야 실현되는 것이다)).
전교의 자유뿐만 아니라 신교의 자유가 통치자게 의해 법적으로 보장되는 1906년까지의 20년간은 한말사회에서의 그리스도교정책은 전국 각지에서 전교(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은 허용하나, 그 전교의 대상인 우리 민족의 신교의 자유가 탄압 금지되고 있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종교정책의 엉거주춤한 이행과도기였다. 이 20년 간에 전국 각지에서 「교안」이 자주 발생했던 것이다.
한·불조약으로 국가정책은 그리스도신앙의 박해를 지양하는 정책적 변화를 가져왔으나, 그 변화를 정령(政令)으로 지방관이나 국민에 명시적으로 알리는 후속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지방관이나 전국 민인들에게 이런 그리스도교 정책의 변화가 주지되지 못했었다. 한편 100년 간에 걸친 전통적인 천주교박해의 사회적 기풍은 뿌리깊은 것이어서 천주교를 사교로 여겨 탄압과 박해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풍조는 여전하였다. 이런 상황하에서 천주교 전교 성직자나 개신교 선교목사드이 내지(內地)로 진출하여 각이제어 과감한 전교 활동을 펴게 된다. 이에 따라 각지에서 교회 대지 구입이나 교회 건물 신축, 선교사 상주 반대 등의 소동이 벌어지게 되었다.
전교사나 교인들을 지역 밖으로 강력 추방하며 때로는 폭행을 가하는 등 불상사가 각지에서 자주 발생하였다. 이런 다툼 가운데 어러는 정치적·외교적인 문제로 확대되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 교인과 민인 간에 재산권이나 이해 관계가 얽힌 관청에서 자주 시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경우 전통적 척사의식을 지니고 있던 지방관이 온당치 못하게 행정적·법적 처리를 내려 물의를 자아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 치외법권(治外法權)의 특권을 누리고 있던 외국인 신부나 선교사가 교인편에 서서 관의 조치나 제재에 간섭하고 나서는 예도 생겨났다. 이들 전교신부나 선교사들은 사안을 그리스도 교인인 까닭에 부당하게 핍밥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관의 조치에 개입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들은 100년 간의 박해 정책하에서 박해받던 교인들을, 이제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보호하고 도와주는 것이 성직자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의무요 책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지방관의 법 집행이 공정치 못한 점을 불신하기도 하였다. 때로는 사회생활에 어두운 나머지 과도한 월권적 행위로 간섭하고 나선 일도 없지 않았다. 그러기에 결과적으로 지방사회를 소란케하고 법질서를 어기는 행위자로 비난받기도 했다. 성직자들의 과잉간섭과 교인들의 조심스럽지 못한 행동이 이른바 「교폐(敎弊)」로 지목되고 지탄받는 사례도 발생하였다.
지방관과 만인들의 감정을 자극하게 되는 「교폐」가 생겨나는 데에는 이른바 자탁교인(藉托敎人)이 개재되기도 했다. 한말의 문란하였던 지방정치의 현실에서 양대인(羊大人)이라고 불리우던 외국인들이 누리는 치외법권적 특권에 의지하여 사회적 보호를 받거나 또는 사회적 경제적 부당 이익을 얻으려는 사이비교인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 자탁교인은 그들이 겪게 되는 법적·행정적 제약을 교인인 까닭에 받는 불이익이라고 성직자에 호소하여 성직자를 오도하고 교인들의 후원을 유도하는 간계를 서슴치 않은 사이비교인이었다. 이런 자들은 소수였을 것이나 그들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문제는 심각하여, 결과적으로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 교회에 해독을 끼쳤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