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 두 아들을 키우는 한 어머니의 경험담이다. 어머니는 두 아들이 사사건건 싸우는 바람에 어찌해야 할지 항상 걱정이었다. 어머니는 두 아들을 불러 서로 용서하고 화목하게 살아야한다고 훈계를 했다. 이야기를 끝낸 어머니는 앞으로 얼마만큼 사랑할지를 말해보라고 했다. 동생은 “형이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 나도 형을 사랑하고 형이 용서하는 만큼 용서할게”라고 말했다. 그러자 형이 화난 얼굴로 “동생이 또 내 핑계를 대고 있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용서해야 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예다. 누구보다 가까운 형제간에도 조건 없는 용서는 이렇게 어렵다.
용서와 화해. 삶에 있어서 결코 쉽지 않는 말이다. 이 말에 대표적인 한 분을 소개한다. 고정원 선생이다. 이분은 2003년 연쇄살인범 유영철에 의해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4대 독자 아들까지 모두 잃었다. 고 선생은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다. 그렇게 죽음의 유혹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사형수들의 대모인 조성애 수녀를 만났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04년엔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이 태어났다. 신앙인 고정원에겐 더 이상 범인에 대한 원망도 분노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유영철을 살려달라는 탄원서를 썼다.
“용서를 통해 한평생을 몸의 한 부분처럼 생각한 울분과 분노조차 사랑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체험했습니다.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진정 용서하고 화해하며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우린 살아가며 누군가와 서로 아픈 상처를 주고받는다. 무심코 내뱉은 말과 의식하지 않은 행동들이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갈등을 겪고 상처를 주고받은 두 사람 중, 어느 한 쪽이 잘못을 깨닫지 못하거나 마음을 열지 않으면 화해할 수가 없다. 화해란 제대로 된 참회를 통해 진심어린 사죄가 있고 그에 따른 용서가 이루어진 다음의 문제이다. 화해할 준비를 못한 형들을 다섯 번이나 돌려보낸 요셉이 그랬던 것처럼 때론 오랜 기다림과 시간이 필요하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용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어떤 짓을 했던 상관없이 세상 모든 존재가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용서와 화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진정한 삶의 승리자는 적이 아닌, 자기 자신의 분노와 미움을 이겨낸 사람입니다.”
‘사랑과 용서’ 그 자체이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14.15)
억울하고 분해 화가 치밀어 오르고 미움과 원망이 넘쳐올 때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얼마나 어떻게 용서하셨는지 기억했으면 한다. 이럴 때 우릴 모욕하고 화나게 만든 이들을 위해 기도해보자. 죄인인 우릴 언제나 끝없이 용서하시는 주님처럼 우리도 상처준 이들에게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하지 않을까.
9월 순교자 성월을 지내며 각자 마음 속에 자리한 미움과 증오의 잡초를 뽑아내고 사랑과 용서의 씨앗을 심어나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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