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와 비슷한 시기에 비가 내리고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빗방울이 잦아들자 병원 식구들은 작년의 경험(?)을 살려 수재민을 돕기위해 능숙하게 봉사의 짐을 꾸렸다.
8월 4일 오후 10여명으로 구성된 우리 사랑의 의료반은 포천으로 방향을 잡았다. 포천군청에서 다시 길을 잡아 아직 물이 빠지지 않은 덜컹대는 산길 서너고개를 넘어 40여분을 달리자 50여 가구 남짓한 조그만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창수면 고서성리, 아홉채의 집이 물에 푹 잠겼다 나왔는지 가재도구들마다 진흙이 쏟아져 나왔다. 어디서 떠내려왔는지 돼지 한마리가 우리가 짐을 푼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어 이번 수해의 참상을 전해주는 듯했다.
우리가 컵라면으로 허기를 면하고 있는 중에도 마을 주민들은 가전제품의 진흙을 닦아내고 무너진 담장을 손질하는 등 잠시도 손을 놓을 줄 몰랐다. 저녁이 다가오자 일손을 놓은 주민들이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했다.
35명이 대피해 있는 마을회관에는 우리가 왔다는 소식을 어떻게 전해들었는지 이웃주민들까지 몰려들었다. 내과 정형외과 피부과 안과 신경외과 등의 진료를 받은 이들이 70여명.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이들도 수해복구과정의 과중한 노동으로 인한 감기몸살과 피부병, 벌레물림, 두통에다 이전부터 지니고 있던 관절염, 중풍, 후유등 등이 겹쳐 더욱 지쳐 보였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너무 피로해 보여 어깨를 주물러드리자 눈물을 글썽이셨다. 조그만 위로의 행동이 이들에게는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이 새삼 가슴으로 울려왔다.
밤9시, 진료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할머니 한분이 찾아와 풋고추가 든 봉지 두개를 의료진들에게 건네고는 어떻게 감사해야할지 모르겠다며 어쩔 줄 몰라하는 봉사자들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다.
『위로하러 왔다가 오히려 우리가 위로를 얻은 것 같다』는 한 봉사자의 말에 우리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봉사에 있어 형식보다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위로를 전하려고 하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