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력지 「뉴욕타임즈」는 지난 천년간 인류가 발명한 100대 위업중의 하나로 마침표(.)를 선정하였다. 그까짓 부호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지나치면 그 자체가 앙화이다. 물론 오늘날 아무도 마침표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러하지 않다는데 심각성이 크다. 며칠 전 저녁 뉴스에 한 문장이 23줄이나 된다는 판사의 판결문을 들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그 판결문 중의 몇 가지 용어를 물으니 그 뜻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일목요연하게 쉬운 현대(?)용어로 끊을 데서 끊고 마감할 데서 마친 내용이었다면 적어도 보통 중등교육(12년)이상의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그 말의 뜻을 정말 몰랐을까? 언어의 불소통이 존재한다면, 도대체 누구를 위하여 그 판결문을 썼단 말인가? 가능한대로 단문으로 논리를 이어 뜻이 명확하게 했다면, 열 사람이 읽어도 그 뜻이 똑같이 이해되게 기술했다면, 그 이상의 명판결문은 없었을 것이다.
예전 라틴어를 공부할 때 동사 하나가 264가지로 변화하여 여간 골머리를 앓은게 아니었다. 언제나 성과 수와 격이 일치해야 하고 이에 따른 정확한 변화가 모색돼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복잡한 문법체계는 인간의 논리에서 마침표가 그 해결책이었으리라. 마침표로 일단락된 사고가 그러첨 복잡한 변화로 언어를 구사하지 않아도 충분하게 되었을 것이다. 결국 마침표가 이용되면서부터 언어는 단순화 과정을 거쳐 오늘의 각국 언어로 발전되었을 터이고 라틴어는 결국 사어가 되었을 터이다. 한문으로 된 문헌이나 고전을 들추면서 비전문가인 나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일이 어디에서 끊어 그 뜻을 헤아리느냐 하는 점이었다. 이것이 미문이나 문화유산인 서책인 경우 더욱 그러하다.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 자체가 곤란한 것이다. 마침표만 있었으면….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횡설수설 끝없이 사설을 늘어놓아 인내심의 한계를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사회현상도 마찬가지이다. 마침표를 확실하게 찍어 다음으로 논리를 연결치 못하고 복잡하고 미묘하고 수고롭고 허허롭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허공의 언어들이 난무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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