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막 끝나가던 무렵, 펜클럽 회원 60여 명이 안동으로 문학역사기행을 떠났습니다. 2012년 한국에서 열릴 ‘국제 펜 대회’를 앞두고 해외 문인들에게 우리 문화를 잘 알릴 수 있는 예비지식을 갖추기 위해 세미나 장소를 안동으로 택했던 것이지요. 안동은 과연 우리의 전통 문화가 곳곳에 살아 있는 고장이었습니다. 더구나 하회마을은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되어 온 마을이 축제 분위기였지요.
폭염 때문에 간단히 둘러보고 저녁때는 농암 이현보 선생의 종택이 있는 ‘분강서원’ 마당에서 세미나를 했는데, 얼마나 덥던지 마치 우리의 인내를 시험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행사를 마친 일행은 구불구불 강을 따라 산 중턱으로 올랐지요. 거기 4층 건물로 널찍하게 자리 잡은 ‘국학문화회관’에서 이름 모를 꽃들, 새들, 나무들의 환영을 받으며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3년 전 개관한 곳이라는데 선비문화체험을 하기 위해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단체 손님이 온다고 합니다.
이튿날은 다시 아래로 내려와 우리 문화의 자랑 ‘도산서원’을 예방했습니다. 전교당 마루에 앉아 민족의 대 스승 퇴계 선생님에 대한 강의도 듣고, 멀리 보이는 낙동강이며 ‘도산 12곡’에 쓰인 주위 산야도 감상했지요.
그리고 더 아래로 내려가 우리 문학인들의 관심사인 ‘이육사 문학관’을 찾았습니다. 생가터에는 ‘청포도’ 시비가 서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문학관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바로 앞에는 낙동강, 그리고 강 저편에는 길게 벋은 산 산 산…. 우리 현대문학 100년 시사에 최고의 시로 꼽히는 ‘광야’의 탄생지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침묵하다가 문학관에 들어 선생의 일생을 영상으로 관람하고 여러 가지 유품도 구경했습니다. 행동하는 민족시인! 40년 짧은 생애에 감옥을 17번이나 드나들었던 독립투사! 자신의 본명 ‘이원록’보다 죄수 번호 264를 즐겨 쓰신 이육사 선생님!
애석하게도 해방을 눈앞에 두고 옥사하신 그분이 퇴계 선생의 14대 손이라는 것도 이번에야 알았습니다. 외가 쪽도 대단했어요. 독립운동으로 인해 서대문형무소에서 최초로 죽임을 당한 왕산 허위 선생이 외종조부랍니다.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민족의식이 싹 터 6형제 중 4형제가 감옥 생활을 했다는군요. 그날은 마침 육사 선생님의 유일한 혈족인 따님 이옥비 여사가 나와 회고담을 들려주었습니다. 3살 때 이웃 할아버지 등에 업혀 마지막 본 아버지의 모습, 용수를 쓰고 포승줄에 묶인 채 끌려가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어렴풋이 기억난다고. 어머니가 어린 자기에게 아버지의 삶과 문학에 대해 하도 자주 이야기해 정말 듣기 싫었는데, 이제는 귀한 양식이 되었다고. 강한 아버지, 무서운 아버지이기도 했지만 인정 넘치는 아버지였음도 알고 있다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내놓으신 이육사 선생님! 저는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수도 없이 가르쳐 왔던 그분의 예언자적 시 ‘광야’를 도도히 흐르는 낙동강 앞에서 목 놓아 읊어보았습니다.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 하였으리라 //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광복 65주년, 그리고 순교자성월을 보내며 순국선열들의 영혼을 위해서도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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