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퍼렇게 날이 선 칼이 나무 작대기 위에 꽂혀 있다. 길다란 낫을 어깨에 둘러매고 핏발 선 눈으로 사람들을 노려본다. 다른 한 켠에서는 수녀들이 부상을 입은 청년의 손을 잡고 분주하게 뛰어가고 있다.
동티모르의 비극은 상상을 넘어선다. 총과 칼을 피해 몸을 맡긴 성당도 안전하지 못했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벨로 주교의 숙소도 불태워졌고 피난민들은 살해됐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강제로 트럭에 태워져 도시 밖으로 버려졌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뛰어들어 온 사람들을 보호하다가 4명의 신부와 10여명 이상의 수녀들이 희생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일설에 의하면 살해된 신부는 열댓명 이상이 될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동티모르의 비극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인도네시아가 유엔 평화유지군의 파병을 수용하기로 함에 따라 일단 해결의 실마리는 잡은 듯 하지만 길은 멀다.
이제 폭력은 잦아들겠지만 또 다른 비극이 시작된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묵인 속에서 자행된 민병대의 폭력은 수십만의 난민을 양산했다. 이들은 집을 떠나 산악지대나 정글로 몸을 피했지만 이제 식량이 부족해 굶주림이 시작되고 있다.
국제사회가 신속하게 동티모르의 참상에 개입하지 못한 것은 각국의 국제 정치, 경제적인 이해타산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티모르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수없이 인권침해 사례가 고발돼왔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자국의 이익에 부합되는 바가 별반없는 이 조그만 섬에 대해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급박하다. 피신한 난민들은 국제사회의 지원과 도움이 없으면 지금까지의 폭력으로 인한 희생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갈 것이다. 이미 국제 까리따스 등 구호기구들은 지원을 시작했고 각국의 가톨릭교회가 적극 관심을 갖고 도와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민족 상잔의 비극을 겪은 우리는 그들의 아픔이 얼마나 클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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