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면 맨 먼저 떠오르는 날이 한글날입니다. 저는 교직에 있을 때 신학기가 되면 학생들에게 꼭 물었습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지요?”
학생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각자 이 사람 저 사람 이름을 불러댑니다. 그러면 저는 꼭 한마디 했지요. “아니, 왜 망설여요? 일단 첫 번째는 금방 답이 나와야지요. 자 다같이 크게 해 보세요. 세종대왕! 그 다음부터는 여러분 마음대로!”
본인은 일찌감치 한문을 터득해 아무런 불편이 없었으련만, 오직 하층 백성을 불쌍히 여겨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 문자 제정의 동기가 바로 예수님의 성심, 측은지심이었기에 존경과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게다가 워낙 과학적이라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7만여 발음을 낼 수 있고, 한 글자가 한소리를 내는 음소 문자라 발음 기호도 따로 필요 없습니다. 오죽하면 언어학자들이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입을 모았을까요. 그러기에 유네스코에서는 1989년 ‘세종대왕’ 상을 만들어 해마다 인류의 문맹률을 낮추는 데 공헌한 단체나 개인에게 상을 주고, 1997년 ‘훈민정음’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하기에 이른 것이지요. 그뿐인가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세계 모든 문자를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등의 기준에 따라 순위를 매겼는데, 그 1위는 단연코 우리의 한글이랍니다. 그 덕분에 세계에서 단 하나, 문맹률 0%라는 경이적인 기록에 육박하는 우리나라!
이토록 자랑스런 한글은 마침내 작년 8월 세계화의 길에 올랐지요. 언어는 있으나 문자가 없는 나라, 인도네시아 부톤섬 인구 6만 명의 찌아찌아족에게 그들 언어를 한글로 표기한 교과서를 만들어 준 쾌거를 기억하실 겁니다. 그것은 한 소수 민족에게 고유문화의 명맥을 잇게 했으니 마치 ‘생명’을 선물한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그 일의 주역이었던 ‘훈민정음학회’ 이기남 이사장은 지금도 언어는 있으나 문자 없는 나라들을 위해 뛰고 있습니다.
게다가 작년 11월, 세종홀에서는 또 하나의 쾌거, ‘유니파닉스’ 세계화 선포대회가 열렸습니다. 유니(union)는 하나, 파닉스(phonics)는 발음, 즉 ‘단일 발음기호’라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한글로가 아니라, 훈민정음 28자로 글로벌 발음기호를 만들어 세계화의 가능성을 열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의 주역은 강영채 박사님! 1953년 미국 유학의 길에 올라 영문학을 공부하고 오랫동안 대학 교수로 지내다가 지금은 워싱턴 주재 ‘킹 세종 연구소’의 대표로 활동하는 분입니다. 그는 교포들이 영어 발음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고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연구 연구 끝에 유니파닉스를 창안했다지요. 2001년 그 발음기호로 영어 사전을 편찬해 교민 사회에 큰 호응을 얻었고, 2002년에는 미국 의회 도서관에 지적 재산등록을 마쳤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부터 ‘유니파닉스 언어교육 연구소’가 이를 현실화시켜 현재 다국어 학습 콘텐츠 개발 및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강영채 박사님은 말씀하셨지요.
“가장 좋은 훈민정음을 두고 영어 교육에 과잉투자하는 우리 국민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훈민정음이야말로 세종대왕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유산, 중동의 석유보다 값비싼 자산입니다. 우리는 조상이 오토매틱 자동차를 유산으로 주었는데, 그 열쇠를 찾지 못해 아직도 바퀴를 밀며 끌고 가는 형국입니다. 이제 훈민정음을 제대로 살려 홍익인간이라는 건국이념에 맞게 세계로 수출할 때가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를 인터넷 강국으로 만든 일등공신 훈민정음!
저는 광화문에 나갈 때마다 세종대왕 동상 앞으로 가서 큰절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토록 훌륭한 임금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