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가을이다.
아침저녁 산산한 바람에 콩잎에도 단풍이 들었다.
길을 오가다 보면 집 근처 저수지에 무리지어 떠 있는 철새들이 하나, 둘씩 점차 늘고 있다. 저마다 차가운 물속에 머리를 들이밀고 먹이를 찾느라 부산하다.
들녘의 황금빛이 나날이 짙어지고, 국도변에는 입을 벌린 채 떨어져 있는 밤송이들이 어지럽다.
시골에 살다 보니, 계절이 시시각각 오가는 것을 피부로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무더위와 뜬금없이 내리던 비, 그리고 태풍 속에서 9월을 보내며 ‘과연 가을이 올까?’ 싶더니 어김없이 다가와 깊어지고 있는 이 계절이 그저 신기할 뿐이다.
낮이 짧아지자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 시간만큼 생각도 점차 많아진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런 걸 보면, 어쩌면 ‘시간’이라는 것이 하느님이 주신 선물 중에서 가장 엄청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시간이 우리 곁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시간이 비껴가며 지난여름 죽을 것처럼 견디기 힘들던 통증도 어느새 잊히고 있으니 말이다.
시간 앞에서는 영원할 것 같은 것도 시들고 썩는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싹을 틔워 꽃을 피워내고 열매를 맺는다.
순간은 사라지고, 깊고 그윽한 것만 마지막 앙금으로 남을 때까지 흐르고 또 흘러간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잠시 머무는 이 가을 햇살이 귀하고 고맙다. 내가 이 계절에 거둬들이게 될 과실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마음이 갑자기 조급해진다.
게을리 살아온 것은 아닐까 마음을 다잡아 본다. 살아온 날들이 부끄러워 겸손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대자연 앞에서 숙연해져 마음을 조아리게 되는 참으로 좋은 계절이다. 참으로 좋은 하느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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