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대건 신부님과 함께
천주교 제주 선교 100주년 기념 상해-제주간 해상 성지 순례(라파엘호와 함께)의 가톨릭신문 광고 중 「금가항성당, 횡당성당에서의 미사」라는 글을 보는 순간 선광과 같은 것이 내 머리를 관통하였다. 8월 23일 아무하고도 의논 없이 제주교구로 참가비를 송금한 나는 아내에게 해상순례에 대해 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넌지시 얘기해 보았더니 일언지하에 반대였다. 아들 딸 며느리 사촌동생들도 『육상에 성지도 많은데 태풍의 계절인 9월에 무슨 해상 순례냐』는 것이다.
갑론을박(?) 끝에 아들딸이 엄마를 달래서 우린 기도 할 터이니 몸성히 다녀오시라는 결론이 나자 나는 김대건 신부님과 신학교 재학 중 세상을 떠난 세 분의 형님에 대한 얘기를 섞어 가면서 신나게 얘기하였다. 즐거운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가족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지만 내심 나도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실은 영세 대자 두 분이 나와 함께 가기로 돼 있었으나 부인들 반대로 나 혼자 가게되었으니 더욱 불안할 수 밖에.
나는 결심을 굳히기 위해 출항 1주일 전에 서울-제주간 왕복 항공권을 아예 사버렸다. 그리고 김대건 신부님에 관한 몇 권의 책에서 참고 자료를 간추렸더니 한 권의 책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제 김대건 신부님이 걸어가신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우리 신앙 선조들의 자발적 교회 창립의 정신과 순교의 얼, 그리고 신앙 공동체로서의 삶의 길을 되새겨 볼 것이다.
2. 금가항성당과 횡당성당
금가항성당! 이곳이 어딘가? 1836년 12월 2일 동료와 함께 성서에 손을 얹어 서약을 하고 16살의 어린 나이에 고국을 떠난지 9년만에 주님의 기특한 종의 영광을 안은 곳이 아닌가.
우리 교회 사상 처음인 해상 순례단이 부르는 『장하다 순교자 주님의 용사여… 무궁화 머리마다 영롱한 순교자여 승리에 빛난 보람 우리게 주옵소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목메어 떨리는 우리들의 마음엔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김대건 성인을 찬양하는 한편 후예인 한국의 신부 일곱 분과 그를 극진히 따르는 평신도들이 드리는 한없는 흠모의 자리였다.
성당 옆의 조그마한 경당에는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와 작은 동상이 모셔져있어 경배하고 욕심(?)이 생겨 황송하지만 작은 제대에 손을 얹고 사진을 찍었다. 『안드레아 성인이시여, 이제 저희는 당신께서 이겨내신 그 격랑의 바다를 건너가겠나이다』
교우촌인 금가항성당과 신학교 성당인 이곳에서의 첫 미사, 신부님은 두곳에서 강론을 하셨을텐데. 성인께서는 그 때 박해 속에 자라는 조국의 교회 실정을 말씀하시며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이젠 우리가 이 곳에 「공번되고 보편적」인 공동체의 한 지체가 되어 주도록 주님께 기도하였다.
3. 새벽 3시의 라파엘호
상해에서부터 라파엘호에 3재고로 분승하여 표착예정지인 용수리로 가는 계획이 변경되어 제주로 귀항한 라파엘호는 돛을 달고 키를 갖춘 다음 일용할 양식과 물을 실었다. 젊은 사제들이 선원인 양 힘에 겨운 무거운 장비를 운반하며 말 한마디 없다. 물과 같이 흐르는 땀, 씻을 틈이 없다. 45자의 라파엘호가 바다에 내려질 때 모두의 손에는 묵주가 쥐어졌다.
상해로 갈 때 그리고 올 때 나는 무엇을 느낄 것인가. 우리가 중국 땅에 가는 것은 김신부님께서 계셨던 상해의 어딘가에서 소리 없는 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것이며 또한 보이지 않는 그분의 모습이지만 그의 발자취를 더듬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제 저 검푸른 바다를 향해 떠난다. 밤 10시가 지나 제주 외항에서 아라호가 라파엘호를 예인한다.
자정을 넘긴 새벽 3시, 나는 교체 승선하기 위하여 갑판의 선미 쪽으로 갔다. 사방은 어두움에 싸여 컴컴하여 보이는 건 라파엘호의 선수와 선미에 있는 촛불 같은 빛을 내는 두 개의 선등 뿐이다. 이게 웬일인가? 두 개의 빛이 하나만 보이다가 둘 다 안보인다. 쥐어짜는 소리로 나는 『주님이시여! 성모님이여! 자비로우신 성모님이여! 저 라파엘호를 보호해 주소서. 저 라파엘호 거친 풍랑에 잠기고 있습니다. 저는 주님의 권능을 믿습니다. 저 라파엘호에는 우리의 목자 두 사제와 평신도가 타고 있습니다. 154년전 조선의 수선탁덕이 목숨바쳐 목자를 인도하던 지극한 사랑의 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저희는 여기 왔나이다. 지금 저에겐 아무 힘도 없고 할 일도 없습니다. 나는 가지고 간 「김대건 성인의 영성」9일기도와 한국 성인 호칭 기도, 묵주신공 그리고 정지용 이해인 홍윤숙 최민순 신부 등이 쓴 김대건 성인과의 만남의 시를 마음속으로 조용히 읽었다. 동트는 황해의 새벽바람 더욱 거세지고 검푸른 파도를 이리 저리 올라타고 내리는 라파엘호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주님! 살려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주님. 망망대해를 순례하는 저희는 그 옛날 안드레아 신부님께서 두 개의 돛이 찢어지고 28일 동안의 정처 없는 표류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기적으로 느꼈습니다. 해가 머리를 내밀 무렵 라파엘호의 선상에서 힘차게 두 손을 번쩍 흔들어 보이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오히려 힘이 쑥 빠졌다. 주님이시여! 주님께서는 안드레아를 극진히 사랑하셨나 봅니다. 그를 따르는 제주교구 순교 후예들의 정성을 들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얼굴 씻어 흘린 눈물자국 지우겠습니다. 빛은 생명이며 사랑인가 봅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다. 그러나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 요한15)
1845년 8월 17일 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님은 8월 31일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와 현석문 등 모두 13명이 라파엘호를 차고 상해를 떠났다. 9월 11일의 항해일지는 「강한 바람과 폭풍우로 큰 선박에 연결된 굵은 밧줄이 절단되어 외로운 항해가 시작되었고, 좇도 없고 키도 일부분은 파손되었고, 승선한 사람은 모두 배멀미로 피곤하여 라파엘호를 정상적으로 운항할 수 없어 해류와 바람에 의해 표류가 시작되었다」고 적고 있다.
9월 11일은 만 68세가 되는 나의 생일이다. 주님은 저에게 특은을 주시어 어제는 금가항성당에서의 미사의 은총을 주셨습니다. 감당키 어렵습니다.
순례를 통해서 나는 25세의 짧은 인생을 조국성화와 겨레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으시 애국처년 김대건을 발견하였다. 그분의 신심과 웅대한 생애를 그저 흠모할 뿐이다.
김대건 신부님과 함께 한 해상순례는 제주교구의 행사 뿐만이 아니라 한국 교회사의 한 장에 기록될 일이다. 성지순례는 보고 듣고 행(見 聞 感=知行)하는 것이나 해상순례에서는 154년 전 김대건 신부님이 몸소 겪은 일을 복원할 뿐만 아니라 직접 체험하며 기도하는 것이기에 더욱 큰 뜻이 담겨 잇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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