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외출하는 나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며, 땅속을 힘차게 뚫고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여러 가지 모습을 본다. 각기 다른 사람의 삶을 관찰하며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세태를 읽기도 하고 작품 속의 인물을 묘사해보기도 하는 시간이다.
지하철에서는 좀체 「노약자 장애인 지정석」가까이에 가지 않는다. 노인 대접 받기는 아직 이른 나이기도 하지만 눈을 감고 앉아있는 젊은 이를 보는 것이 민망하고, 또 어쩌다 피곤해서 잠시 앉은 학생을 일으키는 것도 안쓰러운 일이어서다.
그날은 토요일 오후였다.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바로 타고 보니 차내가 매우 붐볐다. 원치 않았지만 지정석 옆에 설 수밖에 없었다. 내 옆으로는 열 서너살 되어보이는, 그야말로 알밤같이 생긴 사내아이 셋이서 미르를 맞대고 쿡쿡거리며 얘기하는 것이 보였다. 대학로 어디 전시회를 다녀오는 듯 그림과 대학로에 관한 얘기를 하는데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순진해 보여서 호감이 갔다.
몇 정거장을 지나서 예의 지정석에 앉았던 승객 두 사람이 내렸다. 그러자 세 녀석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당연히 빈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너희 세 명중 나이가 가장 많은 녀석이 앉아. 서 있는 노인이 안계시니까 너희들이 앉아도 돼』했다. 그런데도 녀석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앉지 않았고 한 녀석이 주춤거리며 『그래도 안되죠. 그 좌석은 지정석인데…』하며 머쓱하다가 꾸벅 절을 하더니 두 친구를 끌고 저만치 가버렸다. 그 순간 『요즘 아이들은 어른들을 몰라보고 제멋대로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 그 아이들의 뒷모습에 비해 너무나 추해보이는 어른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그속에 내 얼굴도 있음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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