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 9월, 치과의사인 아내와 한 살된 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이도행(세바스티아노·37)씨.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2심 변론을 맡은 천주교 인권위원회 변호인단이 검찰증거의 불확실성을 증명해냄으로써 무죄로 석방되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선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 의심이 가지 않는 엄격한 증거가 있어야 하지만 피고인의 유죄를 추정케 하는 여러가지 정황만 있을 뿐 직접적이고 명백한 증거가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는 형사소송법상 중요한 원칙인 증거재판주의와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라는 대원칙을 확인시킨 판결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간접증거라도 종합적인 증명력을 고려할 때 유죄 증거가 될 수 있고 사건심리가 불충분하다』는 취지로 2심 판결을 파기하고 이를 다시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어떻게 한 사건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이 사형과 무죄라는 극과 극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이는 원칙을 지키느냐 아니냐의 차이점일 것이다. 우선 유죄로 판결되기 위해서는 범행동기가 있어야 하고 본인의 자백 그리고 범행에 사용된 증거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조건이 하나도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간접적인 증거와 정황만 가지고 한 사람의 생명이 달려있는 문제를 쉽게 판단할 수 있는지 사법부의 판결이 의심스럽다.
「열 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수형자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대원칙은 형사소송에 있어 증거재판주의의 중요성을 대변해 주는 격언이다. 수백년을 걸쳐오면서 직접적인 증거없이 심증이나 정황으로 판결을 해 인권을 유린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경험을 통해 정해진 원칙이다. 그러나 사법부는 이런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표현대로 간접증거만으로도 유죄판결이 가능하다면 그간에 검찰과 경찰이 철저하고 과학적인 수사를 통해 진범을 잡아내도록 노력하기보다는 정황과 예단에 의해 범인을 만들어 왔던 수사관행을 인정하는 것으로,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희생될 지 상상할 수 있다.
예수는 「양 백 마리 가운데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아흔 아홉 마리는 그대로 둔 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온 들판을 헤매고 다니시는 분」이시다.
그러기에 김수환 추기경님은 「이도행을 생각하는 모임」의 발족미사를 집전하시면서 이 사건에 대해 우리가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국가는 어떤 자세로 법을 집행하여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지 분명히 말씀하신다. 이 사건은 우리 신앙인이 이 시대에 어떤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또 하나의 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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