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예술과 문화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들이라, 눈과 귀가 자주 호강을 하게 된다. 지난주에는 ‘반락(盤樂)’이라는 제목 아래 ‘옵바는 음반쟁이야’라고 부제를 단 공연 덕분에 귀가 즐거웠다.
음반 반(盤)자에 즐거울 락(樂)이라니! 이름 그대로 고(古) 음반 수집에 환장한 세 사나이가 자신이 소장한 음반의 소리를 복원해 들려주며 차례로 해설을 곁들이는 자리였다. 그러니 그 공연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음반인 셈이다.
우리는 1930년대의 ‘옵바는 풍각쟁이야’를 비롯해 1960년대 후반을 풍미한 가수 배호의 노래까지, LP에 담겨 있는 낯설고도 익숙한 몇 곡의 노래와 만담을 들었다. 예전 한글 표기법에 따른 노랫말을 들어보니, 힘겨운 시절을 버티게 해준 낭만과 해학이 절로 느껴졌다. 이처럼 대중예술은 그 시대의 삶을 잘 반영하고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런데 그 귀한 LP 음반들이 대부분 고물상으로 팔려가 단추 재료가 되어버렸다고 하니 안타깝지 않을 수가 없다. 훼손되지 않은 채 수집가 손에 들어가 관객들에게 제 소리를 들려주게 된 이 LP판들은 참으로 운 좋고 명이 긴 녀석들인 셈이다. 이 눈 밝은 사나이가 음반을 구해 내오지 않았더라면, 이 또한 단추가 되어 사라질 뻔 했다. 세상 모든 일이 주인공만 있다고 해서 되어지는 게 아니라, 이렇게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공력으로 지켜지고 이어지는 것이다.
공연의 백미는, 음반 해설자와 친분이 두텁다는 이유로 객석에 앉아 있다 무대에 불려 나온 장사익 씨가 부른 노래 두 곡이었다. 역시 음반으로 듣는 것보다 직접 듣는 노래가 훨씬 더 가슴으로 파고든다.
그래서 예수님도 먼 길 마다않고 다니시며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빵을 떼어주신 것이리라. 그리고 우리가 미사 중에 성체를 모시며 의미를 되새기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