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가 선포한 「교회 안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은 『나그네의 길을 가고 있는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2항)고 명시하고 있다.
10월은 「전교의 달」이며 오늘 10월 24일 주일은 한 천년기의 마지막 전교주일이다.
전교주일은 전교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와 선교지역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돕기 위해 교회가 정한 특별주일 중 하나다.
사실 선교는 교회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존재이유 그 자체다.
선교는 교회의 부수적인 사명이 아니라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결정적이고도 핵심적인 요소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한국교회는 새로운 선교열의에 가득 차 있다. 『모여서 기도하고 나가서 선교하자』는 구호 아래 수많은 본당들이 선교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2천년 대희년을 눈앞에 두고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선교열정은 직접 선교를 담당했던 신자들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대규모 선교운동의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교회는 선교활동 중에 성숙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한 것『같이-그렇게』궁핍, 불안, 폭력을 제거하는 활동 가운데 성숙하는 것이다.
이런 교회는 「사도적 교회」요, 「선교적 공동체」이므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하여」존재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그러므로 선교하는 공동체는 남이 제발로 걸어 들어오기를 기대하기 보다 남에게 가서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향으로 형성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수도권 교구들이 본당공동체를 중심으로 벌이고 있는 대규모 선교운동은 참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여겨진다.
끝으로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때다. 교회의 사회참여도 「전적인 인간 사랑으로 이해되는 선교사업」으로 이뤄져야 한다.
선교는 본래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파견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밥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천주교회가 자부심을 가져온 인권회복, 정의구현, 생명·환경, 사회복지, 민족화해운동 등 교회의 사회선교의 명분도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교세확장의 한 효과적인 방편으로만 여겨져 온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볼 일이다. 또 정말로 온 누리와 온 겨레의 자유와 해방을 생각하고 특히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비롯되어 공동선을 지향했던 것인지도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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