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문 밖에 위치했던 사형장은 조선왕조 시대인 1416년부터 서울의 주요 사형장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1801년부터 70년간에 걸쳐서 무수한 천주교 신자가 순교했는데, 이름이 밝혀진 98명 가운데 44명이 성인이 되었다.
시민공원으로 변한 바로 그 터에 순교자 현양탑이 제막된 것은 지난 5월 성령 강림절 때였다. 죄수들의 목에 걸던 칼의 형상으로 화강암 탑이 세 개 우뚝 솟은 것이다. 탑아래로는 두터운 판유리를 층층이 쌓아서 만든 분수도 있다.
그 작품을 3년에 걸쳐서 만든 가톨릭 조형예술 연구소 소장인 조광호 신부와 함께 나는 제막식에 앞서서 현장을 둘러보고 크게 감동했다. 감탄도 했다. 고층빌딩의 숲속에서 아스팔트의 열기가 가득 찬 자동차 도로 곁에서 이런 아름답고 장엄한 기념탑을 보게 되다니!
화강암 기둥 꼭대기에 패인 동그란 부분 즉 죄수의 목을 둘러싸던 부분에 담긴 파란 하늘이 마치 참된 신앙과 진리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버리겠다는 순교자들의 굳은 의지와 같이 느껴졌다. 동시에 그것은 무수한 순교자들의 오늘의 현실을 내려다 보는 불타는 눈과 같이도 보였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뭔지 모르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탑 앞에 서 있는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초라하다는 자의식이 들기도 했다.
『이제서야 우리 나라도 순교자를 기리는 번듯한 기념탐을 하나 가지게 됐다구!』
조광호 신부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나는 액면 그대로 그 말을 받아들였다. 사심 없이 몸살이 날 정도로 그 작품에 매달린 조신부로서는 당연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넘쳤다. 그 모습이 내 눈에 그렇게 대견하게 보일 수가 없었다. 동시에 『이제서야』라는 말이 묘한 여운을 내 가슴속에 남겼다. 여태껏 우리(교회)는 무엇을 했던가? 이제서야 겨우…. 그런 뉘앙스도 풍겼다. 어쩌면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그후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현양탑을 방문했는지, 그 앞에서 얼마나 순교자들을 생각하며 묵념과 기도를 했는지는 나는 전혀 모른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누군가가 현양탑을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하여 훼손하고 분수 주위의 유리로 만든 조각의 일부를 깨어버렸다는 것이다.
술 취한 사람의 실수나 짓궂은 개구쟁이들의 단순한 장난으로 보아 넘기기에는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한 짓이 분명했다.
누가 했을까? 어떤 의도로 했을까? 단군동상의 목을 자르거나 장승백이의 장승의 밑둥을 톱으로 썰어버린 사람들과 비슷한 심리상태에 있는 사람들일까? 가톨릭에 대해서 증오심을 품은 사람들일까? 아니면 『순교자가 다 뭐야?』하는 식으로 생각하는 반종교적 사람들일까?
기념탑의 훼손으로 순교자들은 다시 한번 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한번 죽기도 서러운데 두 번 죽어야 하는가?
역사적인 장소마다 기념탑을 다 세우지도 못한 주제에, 그나마 서울에서 가장 멋지게 세운 그 탑을 우리는 왜 온전하게 보존하지도 못했던가? 그 공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나무란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가? 그렇지는 않다. 신자들인 우리의 책임이 더 크다.
그러나 한편 다른 생각도 들었다. 순교자 현양탑은 상처를 입은 것이 더 제격이다. 오늘날에도 신앙 때문에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각종의 학대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 즉 현실에서 무수한 상처를 입고도 꿋꿋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탑이 순교의 현장에 우뚝 서 있어주기만 한다면 상처투성이라도 상관없다.
오히려 상처투성이 탑이 순교자들에게 더 어울린다.
상처투성이 탑은 모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교회의 모습을 상징하지 않을까?
조신부와 나는 그런 관점에서 의견이 같았다. 그래서 탑을 수리하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도 좋겠다면서 껄껄 웃었다. 물론 씁쓸한 웃음이었다.
『완전히 망가지면 그때 가서 새로 만들어 다시 세우면 되지』
조신부가 자신 있게 말했다. 물론 다시 세우면 된다. 그러나 현양탑도 예술품이다. 모형을 떠어 여러 개를 복제하는 청동조각이 아닌 바에야, 석조물이란 복제가 불가능하지 않은가? 아무리 똑같이 만들어도 제작한 시간이 다르다. 그리고 예술가 자신도 세월따라 나이를 먹을 것이다.
서소문의 탑 뿐 아니라, 우리 교회의 다른 예술품과 기념물들이 관리 소호리나 부주의 또는 외부인의 불순한 동기 때문에 상처를 입는 경우는 없을까? 앞으로 더욱 많이 기념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것을 잘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것은 각 교구에서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겠지만, 전국적인 규모에서 관리를 책임지는 제도를 만들고 전문가들의 협조를 받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본다.
교회의 예술품과 기념들은 종교정인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로 보아서도 엄연한 문화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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