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동강 답사에 나섰다. 태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동강 12절경에 대한 기대로 출발 전부터 가슴이 설레였다. 도로를 잘못 들어 몇 번을 들락날락한 뒤에 겨우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었지만, 길은 비포장 도로에 큰비가 휩쓸고 지나간 터라 말할 수 없이 험했다.
옛 기록에 의하면 동강의 원래 명칭은 「연촌강」이나 「하며강」이었다고 한다. 지금의 동강은 일제 때 붙여진 이름이란다. 어쨌든 초입부터 눈에 들어오는 하며강의 비경은 탄성을 절로 자아내게 했다. 여름 휴가철이 지나서인지 행락객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고 연촌강은 그댜말로 고즈넉한 고요 속에 묵묵히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자연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차창밖을 내다보던 우리 일행의 입에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탄의 소리가 저절로 새어나왔다. 강 건너편 나뭇가지나 바위에는 비닐조각들이 여기저기 넝마처럼 어지러이 널려 있었고, 흙탕물에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비닐하우스 포장재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휴가철에 버리고 갔음직한 쓰레기더미는 오히려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대신 홍수에 떠내려온 승용차 한대가 물길에 말끔히 씻긴 채로 강 한 켠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런 모습은 동강을 따라 안으로 들어갈수록 심했는데, 우리는 그나마도 계속 들어갈 수가 없었다. 놰야하면 큰 물로 도로가 끊겨 차를 되돌려 나와야만 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동강 주변 수십리 길이 모두 이 모양이라고 한다.
자연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을 망치는 것은 단 한순간에도 가능하다. 그리고 망가진 자연을 다시 회복하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도 물론 우리는 익히 잘 알고 있다. 자연은 결코 인공적이지 않은 자연적인 변화에 의해서만 변해야 한다.
관심있는 사람은 누구라도 지금 당장 동강을 둘러보기 바란다. 수 천년을 이어온 동강 굽이마다 기암괴석을 뒤덮은 비닐조각들을 보는 순간만큼은 누구라도 현대문명과 결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질 것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과일과 채소가 아니면 식탁엔 올릴만한 음식이 없을 정도로 요즘 농가에서는 비닐하우스가 각광을 받는다. 그러나 뒤처리가 허술한 비닐들이 수 억년 이어온 동강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크게 결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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