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께서는 외인들에게 가톨릭을 소개할 때 특별히 무엇을 자랑하시는지요?
저는 거룩한 미사성제, 영성체, 고해성사, 성모신심, 이어서 참으로 소중하고 고마운 주님의 제자단 사제와 수도자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빠트리지 않고 자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 사이에 마련한 공간 ‘연옥’의 존재이지요.
우리가 죽어서 갈 저승에 천국과 지옥 두 곳만 있다면, 채점관인 하느님께서 얼마나 입장이 난처하실까요. 분노에 더디시고 측은지심이 유별난 우리 아버지께서 애간장이 녹으실 것 같습니다. 아무리 봐도 어중간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들을 어디로 보내야 한단 말입니까? 분명 그들을 한데 모아 정화의 시간을 갖도록 연옥이라는 공간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귀향입시’에서 조금 모자라는 점수를 받았다 해도 연옥에서 조금만 단련하면 자비로운 주님께선 오래지 않아 분명 천국으로 이끌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개신교 신자들이 거리에서 들고 서 있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피켓에 눈길이 닿으면 저는 깜짝 놀라 얼른 시선을 피합니다. 갑자기 가슴이 섬뜩해지거든요.
저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였기 때문에 은근히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저승에 가서 그분들을 만나고 싶은데, 그분들은 도대체 어디 계실까? 예수님을 모르고 가신 그분들이 과연 하느님 나라에 드셨을까? 그러던 중 교리 지식을 배웠습니다. 구약의 시대에는 율법을 지켜야 하늘나라에 가고, 신약의 시대에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을. 그렇다면 율법도 모른 채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그 해답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알려 주었습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도 양심에 따라서 살았다면 익명의 크리스천으로 하늘나라에 들 수 있다고. 아, 그게 얼마나 반가운 소식이었는지요.
그러나 또 걱정이 있었습니다. 양심이란 알고 보면 너무나 주관적이지요. 그러니 우리 부모님들이 생각한 양심이 과연 하느님 뜻에 부합했을까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도신경에 나오는 ‘모든 성인의 통공’ 덕으로 우리가 드리는 연도나 연미사 등이 연옥 영혼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연옥을 인정하는 근거는 마카베오 2서 12장 39∼45절 말씀에 정확히 나와 있습니다.
요약하건대 전사자들 주검에서 율법에 금지된 우상의 패가 나오자 남은 자들은 그들을 위해 속죄 제물을 바치고 제사 드리면서 그들이 죄 사함을 받고 부활에 이르기를 빌지요. 이것이 가톨릭에서 연옥을 인정하는 근거입니다. 그리고 지상교회, 연옥교회, 천국교회에 사는 모든 믿는 이들, 즉 성도들이 기도를 하거나 선행을 하면서 그 공을 서로에게 나눌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주님의 자비가 필요할 때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면서 그 공로를 그에게 돌릴 수 있으니 얼마나 큰 횡재입니까?
저는 그 사실을 알고부터 조상을 위한 연도를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딱 일 년 작정을 하고 시작했지요. 아무리 바빠도,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일과가 끝나면 그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마침내 일 년을 마쳤을 때, 저는 그분들을 위한 연미사를 맞추고 새벽에 나가 정성껏 미사를 봉헌했지요. 그러고 나니 홀가분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분들에 대한 걱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상들의 차례도 재작년부터 모두 연미사로 봉헌하고 있습니다. 40여년 정성껏 집에서 모셔온 차례를 미사로 바꾸자니 처음엔 괜히 죄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아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지요. 그러나 시댁 조상님들도 저 혼자 드리는 제사보다 여럿이 함께 드리는 미사를 분명 더 기뻐하시리라고 믿고 자유를 얻었습니다.
위령성월을 맞아 모든 연옥 영혼들이 하루 속히 천국에 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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