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했다. 작년 겨울에 다친 무릎 때문에 일 년 가까이 다리를 절며 다니다가, 더 이상 버텨낼 수 없는 시점에 다다르고 만 탓이다. 아무리 작은 수술이라 하더라도 수술은 두렵다.
수술(手術), 말 그대로 누군가의 손이 지니고 있는 기술을 믿고 내 몸을 맡긴다는 것이 아무래도 불편하다. 무엇보다 수술을 하기 위한 통과의례로 마취라는 관문을 거쳐야 하는 것 또한 만만찮은 부담이다. 하긴 마취라는 관문이 없다면, 그 사생결단의 극한상황을 어찌 감당하겠는가.
수술대 위에 누워 될 수 있는 대로 편안한 마음으로 마취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그 때였다.
젊은 마취과 여의사와 정형외과 남자 의사가 언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절체절명의 이 순간에 서로 ‘네 책임’이니, ‘앞으로는 네 맘대로 하라’며 언성을 마구 높이는 것이다.
“여보세요.” 참다못해 의사를 부르자, 여의사가 내 말을 끊었다.
“요 앞에 한 수술 땜에 그러는 거니, 상관 안하셔도 돼요.”
“이 보세요. 상관을 하지 말라니요. 여기서 수 천 수만 건 한 수술을 했을 터이니 내 수술은 그 중 하나에 불과하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지금 두 다리 중 반을 수술을 하러 온 거라고요.”
누굴 탓하겠는가. 타인의 입장이 되어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누구나 쉬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드디어 척추마취를 하고, 하반신에 아무런 느낌이 없어지자 수술이 시작됐다. 이 순간 만큼은 수술을 한 모든 환자들의 고통이 다 이해되는 듯하다.
위로 받지 못해 숭숭 벌집이 되어버린 마음속에 비로소 빛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새벽을 기다리는 깜깜한 방과 같던 마음이 이 한 줄기 빛으로 온통 환해진다.
어쩌면 고통이란, 하느님을 가장 쉽게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눈부신 창(窓)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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