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번 오후였다. 아내와 함께 외출을 하다가 아파트 단지 아래 골목길에서 고교생이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진 채 나를 보면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른, 그것도 교직에 있으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다가가 타일렀다. 『학생이 담배를 피우면 안되지』그 학생의 당당한 답변, 『복학을 해서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피워도 됩니다』『나이가 몇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피워서는 안돼!』내가 주의를 주는 동안에도 그는 보란 듯이 두번이나 담배를 빨아 연기를 내뿜었다. 그 어떤 타이름도 충고로도 안 통했다. 멀찌감치서 이를 지켜보던 아내가 가까이 간 나에게 딱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간섭하지 말라고 몇번이나 말했어요? 당신 명대로 살고 싶으면 제발 그만 해요』
지난 여름, 부산교원연수원에서 중등교사 50여 명에게 「소설지도의 실제」라는 주제로 세 시간의 강의를 하고, 마지막 넷째 시간에는 수강자의 토론이 있었는데, 4명의 발언자 중 2명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다음은 그 발언의 요지.
『실컷 강의 듣고 이런 말씀 드리기는 죄송하지만 제가 있는 학교는 수업 시작 10분도 안돼 3분의2가 엎드려 버립니다. 그러니 소설을 어떻게 가르치느냐 하는 것은 사실 저에게는 딱한 강의입니다』그는 공립 실업고의 교사였다. 또 한 교사는 묻지도 않은 생활지도 문제를 말하면서 『저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흡연 문제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랩니다. 교과진도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학교는 열 사람의 흡연학생보다 한 사람의 일류대학 합격자가 더 중요하다고 보고 있어 한심합니다』그는 사립고교 교사였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말을 나는 그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 골목에서 학생 흡연지도를 하다가 봉변 당하듯 하고서야 이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교사들의 직무유기처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교육이 설 자리를 잃어버린 것이다. 초·중등학교는 이런 문제가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른 모양이고, 머지 않아 대학도 그렇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교육의 물질적 가치의 추구보다도 정신적 가치의 추구에 귀결되는데, 사회가 정신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에만 매달리게 된 것, 사람들에게 참을성의 미덕이 사라지면서 실종된 현실 등, 이런 부정적인 면은 어느날 갑자기 온 것이 아니고 상당한 기간을 두고 진행된 것이다. 그렇다면 역대 정부 당국은 마냥 잘 살아보자는 경제성장만 외치지 말고, 인간성 살리기·도덕성 유지에 바탕을 둔 백년대계를 수립, 줏대있는 교육정책을 꾸준하고도 지속적으로 추진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교육정책은 줏대도 없고, 갈팡질팡을 되풀이해 왔다. 그래서 이미 우리 교육은 골병이 들어도 깊이 들어 있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 정부의 섣부른 처방으로 올데까지 와 버린 것이다.
섣부른 처방이 무엇인가. 교육마저 시장경제 논리로 풀겠다고 학교마다 여러 명목의 경쟁을 부축여 그 실적에 따라 지원금을 차증 지급하는 정책, 청소년 교육에서 교사가 가정방문이 얼마나 주요한지를 안다면 이를 부활하지는 못할 망정, 촌지가 두려워 스승의 날 학부형의 학교출입을 금지시킨 것, 학부형과 전체 교사를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학부모는 반드시 촌지를 전하려고 오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고, 촌지에 초연한 교사라 이를 밝히는 교사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학생들 앞에서 교육자의 자존심을 이렇게 짓뭉개어도 교육이 된다고 생각했던가. 게다가 체벌이 필요한 약일 수도 있을텐데, 필요한 체벌조차 범죄시한 것, 교육을 수요자 본위로 한다면서 교육자를 공급자 개념으로 추락시켜, 교실 현장에서 상하를 없앤 것, 예절은 상하의 위계에서 생기는데,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무슨 예절이 필요한가. 수요자란 말은 상업용어인데 교육마저 시장경제의 논리로 풀려고 하는 발상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가. 여기다가 전체 교육자를 개혁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보고, 교육자의 작은 허물까지 낱낱이 밝혀 동네북처럼 두들겨 팬 일 등등, 우리의 교육이 오늘날처럼 설 자리를 잃게 된 요인은 이렇게 많고도 기가찬다. 게다가 이런 개혁(?)이 일선 교육자와의 의견 교환이나 여론의 수렴 같은 여과장치도 거치지 않고 단시일에 이루어진 것이다. 대학이라고 다를 게 없다. 실정에 맞지도 않는 학부제를 일률적으로 실시하라고 해서 교수는 교수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지금까지 제 자리를 못잡고 있다.
여러말 다 생략하고,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2000년에는 교육부터 바로 세워져야 한다. 정규학교가 학생들로부터 경시되는 나라가 제대로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규학교가 경시되지 않으면 왜 학생들이 옳은 공부는 학원에서 한다고 말하는가. 이런 기현상을 정부는 교육자의 허물로만 돌리려는가. 교육이 바로 서려면 교육자가 현장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신나게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교육을 경제성장 못지 않게 중시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자의 사기를 되살리고 사회적 예우를 드놓이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온 국민들이 교육을 다시 생각하고 , 교육자에 대한 인식을 달리할 수 있도록 국가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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