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디를 남기고 떠난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와 사상을 연구하고 그 뜻을 실천하기 위한 김수환추기경연구소 창립기념 심포지엄이 9일 서울 성모병원 지하1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현대 한국사회의 문제를 김수환 추기경에게 묻는다’를 주제로 열린 이날 심포지엄은 ‘감사·사랑·나눔’으로 요약되는 김 추기경의 영성이 온갖 갈등으로 분절화된 사회, 공동선을 망각한 사회, 사회적 약자가 더욱 소외받고 있는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해답임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김수환추기경연구소 소장 박영식 신부는 “우리는 눈부신 경제성장 못지않게 ‘공정한 사회’를 건설해야 할 막중한 책무를 지니고 있다”면서 “이 심포지엄이 김 추기경님의 고귀한 유지를 받들어 성숙하고 정직한 민주시민사회 건설에 적극 동참하는 계기가 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심포지엄의 기조강연을 맡은 김형석 교수(연세대 명예교수)와 주제발표를 맡은 김우선 신부(예수회·서강대 교수)의 발표내용과 토론자들의 토론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 [기조 강연] 주제 : 현대 사회와 김수환 추기경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사회 공동선 위해 노력하는 교회”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가톨릭은 바티칸공의회를 거치면서 교회 자체의 시대적 사명을 새로이 정립하는 과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사회가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사회 속에 머물며 사회를 위해 존립한다는 방향의 전환을 초래하게 됐다.
사회에 군림하는 교회가 아니라 사회를 위하고 섬기는 교회가 된다는 그리스도 정신에 부합하는 교회 본래의 모습을 회복한 것이다.
김 추기경은 그런 변화의 한 가운데서 그 뜻을 살려가는 모범을 보여줬다. 그 변화의 일환으로 그는 다른 종교들과의 대화와 공존의 길을 열었다. 한국과 같은 다종교사회에서는 필수적인 과업의 하나였다.
김 추기경의 이러한 움직임에 처음부터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동조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그 선택을 잘못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같은 국가와 민족의 번영과 장래를 위해 협력할 수 없는 종교라면 존재가치가 어디에 있으며, 온 인류가 추구하는 사회 공동선을 위한 노력과 협조를 거부하는 신앙이라면 종교의 가치는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정하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의 사회참여 중 가장 영향력이 컸던 것은 그의 정치적 관심과 더불어 그가 민주화투쟁의 중책을 감당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참여 그 자체가 김 추기경의 목표는 아니었다.
민주화운동은 필수적이었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화운동’이고, 정치적 참여를 통해 정치의 바른 길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다운 삶을 이룩하는 데 필수적이었던 것뿐이다. 김 추기경의 정치참여 목표는 진보나 보수의 차원을 넘어 모두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열린사회 건설에 있었다.
말년의 김 추기경이 지녔던 기도와 교회의 핵심은 교회에 대한 애정과 인간화사회를 위하는 염원에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기독교 정신과 현존하는 교회의 현실이 일치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 셈이다. 교리와 진리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며 그것이 어떻게 구원의 메시지인 복음이 될 수 있는가를 밝히는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공통 과제다.
그에 뒤따르는 문제의 하나는 교권과 인권의 관계다.
교권이 인권의 기반이 되면서도 인권을 증진시킬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기독교를 비롯해 모든 종교의 존재 근거가 되는 권위문제도 마찬가지다.
신앙은 권위와 더불어 공존한다. 그러나 그 권위를 어떤 인간이 차지하게 되면 그 권위가 흔히 말하는 권위주의로 퇴락한다. 그래서 현대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들은 권위의식을 정서관념으로 보편화시키려하고 있다.
권위는 거룩하신 한 분에게 속하는 것이고 그로부터 주어지는 권위의 가치는 사회의 선한 질서를 통해 나타나야 한다고 본다. 권위는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신앙적 권위를 빙자해 사회질서를 혼랍스럽게 하거나 파괴하는 사례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더 큰 사회악이 될 수 있다.
기독교가 뜻하는 권위의 원천은 무엇인가?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이다. 성경은 독생자까지 희생시켜 우리를 구원해주신 사랑, 그것이 바로 권위의 존재 근거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과제들이 교회에 주어져 있고 그것을 몸소 느끼면서 우리 시대의 사제적 책임을 담당했던 김수환 추기경을 추모하고 있다. 그 뜻을 이어받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먼 과정을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 가톨릭대학교 김수환추기경연구소
가톨릭대학교 김수환추기경연구소(소장 박영식 신부·가톨릭대 총장)는 김 추기경의 생애와 사상, 영성을 연구함으로써 민주시민 공동체 구현에 기여하고, 그가 남긴 ‘감사·사랑·나눔’ 정신을 실천해 화합과 상생 문화의 지평을 여는데 기여하고자 설립된 가톨릭대 부설 연구소로 올해 4월 20일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가톨릭대 성심국제캠퍼스 내에 개소했다.
가톨릭대 총장 박영식 신부와 손병두(요한보스코) KBS 이사장, 신치구(베르나르도) 전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 소장, 김호권 교수(카이스트 명예교수) 등이 주축이 돼 설립된 이 연구소는 개소 이후 ▲김 추기경의 생애·사상·영성에 관한 연구 ▲김 추기경의 정신을 실천하는 민주 시민사회운동의 확산 ▲강연회·연구발표회 및 학술토론회 개최 ▲연구 논문 및 간행물 발행 ▲김 추기경의 정신을 구현하는 인력 양성과 훈련 ▲국내외 대학 또는 연구기관과의 인적·물적 교류 등 김 추기경의 정신을 펼치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왔다.
지난 5·6·9월 서울 혜화동 동성고 100주년 기념관 세미나실에서 연구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으며, 11월 9일 창립기념 세미나를 열어 김 추기경의 영성과 사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 오는 12월 26일 스테파노 영명축일에는 ‘김수환 추기경 추모기도의 밤’을 열 계획이며 ‘프로 보노 카디널(Pro Bono Cardinal·추기경의 유지를 위한 모임)’ 주관으로 하반기 대중강좌도 기획 중이다.
※문의 02-2164-4466 김수환추기경연구소, 홈페이지 www.cardinalki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