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로 꼽는 나오미와 룻의 고부관계는 읽을 때마다 감동을 줍니다.
유다 땅에 기근이 들어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이민갔던 엘리멜렉과 나오미. 그들 부부는 어쩔 수 없이 이방인 며느리를 얻어 사는데, 남편이 먼저 죽습니다. 그 얼마 뒤, 설상가상으로 두 아들도 죽습니다. 이역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의 심정을 우리는 얼마만큼이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천붕지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네는 마침내 고향 땅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고 며느리들에게 친정으로 돌아가기를 종용합니다. 그런데 두 며느리는 어머니랑 같이 살겠다고 합니다. 나오미는 내 뱃속에 아들이 또 들어있기라도 하단 말이냐고 극구 헤어지기를 강권합니다. 그때 하나는 마지못해 떠나고 다른 하나인 룻은 수천 년이 흘러도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다음 말을 건네며 어머니를 따라 유다 땅으로 건너가지요.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저의 하느님이십니다. … 주님께 맹세하건대 오직 죽음만이 저와 어머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오미는 룻을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 며느리에게 새 남편 보아즈를 맞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줍니다. 덕분에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되지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존재하는 묘한 갈등. 그런 편견을 뒤엎어 준 것이 바로 이 룻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어머니가 오죽이나 잘했으면 두 며느리가 떠나지 않겠다고 했을까요. 또 남편도 없이 남의 나라까지 따라온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오죽 잘했으면 새 서방을 얻어주었을까요. 우리는 룻기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진정한 사랑과 의리를 한눈에 봅니다.
저는 교직에 있을 때,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여교사들이 고부 관계 이야기를 할 때, 암암리에 며느리 편에서 공감하며 듣던 제가 언제부턴지 시어머니 편에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생각건대 대체로 50대 초반부터가 아닌가 합니다. 그것은 저도 곧 시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깨닫고 난 후였을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를 여실히 증명한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을 참 좋아합니다. 입장만 바꿔 놓고 생각하면 이해 못할 일도 없고 용서 못할 일도 없으니까요. 시어머니는 며느리 시절을 겪었으니 얼마든지 그 입장을 이해할 수 있지만 며느리는 시어머니 시절을 겪지 못했으니 그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겠지요. 그래서 특별히 제 며느리 시절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결혼하자마자 사표를 내고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병약하신 어머님을 모셨는데, 아이까지 연년생으로 삼남매를 낳아 길렀습니다. 걸핏하면 아이 업고 걸리면서 어머님 모시고 병원 들락거리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의 푸념을 들으신 수녀님께서 해 주신 말씀. “실비아 씨, 지금 성모님이 와 계신다고 생각하세요. 언제 가실지 모르니 최선을 다 하세요.” 아, 성모님! 저는 이 말씀에 정신을 차리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덕에 어머님과 남편이 영세를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시어머님 모시고 함께 사는 이 땅의 며느리들에게 그 수녀님의 지혜로운 말씀을 선물로 드립니다.
그리고 이 땅의 시어머님들이시여! 언제부턴지 우리는 며느리의 눈치를 보는 입장이 되었지요? 우리는 항상 우리가 며느리 시절일 때를 떠올리며 슬기롭게 고부 관계를 지켜나갑시다.
더구나 요즈음은 외국 며느리도 많아졌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까를 생각하며 사랑으로 품고 거두어 줍시다. 그들 안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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