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이문열의 소설 「시인」과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는 상처받은 인간이 그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고 몸부림치다가 끝내는 극복하지 못하고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는 내용으로,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주제이다. 여주인공이 아름다운 시를 배우려 하는 것도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반어법적 표현이다.
이문열의 소설 「시인」은 권력과 시인을 관계 짓고 있다. 젊은 시절 김삿갓은 민중 시인으로서 권력에 저항하며 자신의 괴로움을 토해내지만, 결국 말년에 순수시에 눈뜨면서 진정한 순수예술의 경지로 나아간다는 줄거리이다. 권력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작가 자신의 입장을 표현한 것이다.
두 작품에 비해, 마이클 래드포드 감독의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는 시의 본질과 사회적 관계 등 다양한 면을 조망하고 있어서 훨씬 풍부하다. 영화는, 칠레의 국민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이태리 조그만 섬으로 망명해 오면서 시작된다. 빈둥거리며 지내던 어리버리한 주인공 청년은 이 시인의 전담 우편배달부가 되면서 점차 시에 눈떠 간다. 우편배달부가 첫눈에 반한 섬 최고의 미인과 결혼하는 과정은 코믹하고 아름답다. 시인은 망명에서 해제되어 고국으로 돌아가고, 우편배달부는 노동자 궐기대회에 참석하여 시를 낭송하려다가 진압과정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한참 후, 다시 그 섬을 찾은 시인은 우편배달부를 추억하며 상념에 젓고 눈가에는 이슬이 맺힌다.
우편배달부 역의 마씨모 트로이시는 촬영이 끝난 직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아픈 몸을 이끌고 혼신을 다해 연기한 것이다. 자세히 관찰하면 영화 후반부 주인공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다. 일생일대의 연기를 마치고 영화 속 우편배달부처럼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일 포스티노’에는 시 예술의 창조과정이 담겨 있고, 그것을 통해 예술의 여러 본질적 측면을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순수예술과 참여예술이 상호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틀 속에서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차원 높은 담론을 얘기하면서도, 영화는 설명적이거나 심각하지 않고, 단순하고 소박하며 포근하고 유머러스하게 전개된다.
우편배달부는 시인에게 시가 무엇이냐고 묻자, 시인은 ‘은유’라고 답한다. 후에 시인은 시를 쓰면서 ‘어부의 그물’을 묻는다. 우편배달부는 ‘슬픈’이라고 답한다. 시인이 이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묻자, 우편배달부는 첫눈에 반한 여인 ‘베아트리체 루쏘’라고 한다. 우편배달부가 섬의 아름다움을 녹음하고 부패와 불의에 저항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예술의 순수성과 참여성을 얘기하고 있다. 무지한 섬 청년이 고도의 시 예술에 눈떠 가면서, 아름다운 여인 베아트리체 루쏘를 사랑하고, 섬의 아름다움을 체득하고 마침내 정의를 위해 숨져간 것이다. 예술의 의미와 본질, 효용 그리고 사회적 가치가 아름다운 화면과 음악 그리고 절제된 대사와 어우러져,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듯이 ‘일 포스티노’의 영상은 전개된다.
영화 종반부, 추억이 그리워 다시 섬을 찾은 시인을 우편배달부의 어린 아들이 무심히 쳐다본다. 일본 중세 산문에, 죽은 사람에 대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무심히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남아있는 흔적을 보면 정말 슬프다고 했다. 그 추억이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해변을 거니는 시인은 눈물을 글썽인다.
영화는 당대 세계적인 대시인과 무지하고 어리숙했던 우편배달부의 대비를 통해 극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우편배달부가 예술적 본질에 눈떠 가고 또 자신의 삶에서도 그러한 가치를 실천하다가 이름 없이 사라져 갔지만, 어떤 유명 예술가보다 더욱 감동적이고 돋보이지 않을 수 없다.
시란 무엇인가? 공자께서는 ‘생각에 삿됨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생각이 순수하고 발라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누군가는 신(神)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람을 시인이라고 했다. 마씨모 트로이시가 죽기 전 혼신의 힘을 기울여 연기했던 이름 없는 우편배달부 시인의 표정 연기 하나하나, 대사 하나하나가 그렇게 인상적일 수 없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마다 마음이 순수해지고 영혼이 정화되는 듯하다. 이것이 시가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효용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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