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12월 27일 성탄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서울구치소에서 연락이 왔다. 내일 사형 집행이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 당시 성탄과 부활 끝에는 연례행사처럼 치르던 일이었기에 우리 봉사자들은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구치소로 모였다.
사형 대상자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기도를 하던 우리들은 정오 무렵, 오늘 사형당한 사람 중 임 율리아 자매도 속해 있다는 것을 들었다. 조용하고 하얀 얼굴로 우리의 관심을 끌던 자매였다. “나 죽은 다음엔 꼭 죄수복을 벗기고 하얀 옷 한 벌 입혀 달라”고 유언을 남겼던 율리아 자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막상 그 자매가 사형대상자에 속해 있었다는 것을 들으니 마음이 아팠다.
유난히도 춥고 눈이 많이 왔던 그해 겨울, 영구차를 준비할 돈도 없던 우리는 구치소에서 물건을 실어 나르는 트럭바닥에 가마니를 뜯어 깔고 그 위에 사형수 시신 세 구를 인수받았다. 관이 너무 얇아 시신이 보일 정도였다. 무섭게 휘몰아치는 눈발은 아무것도 덮지 않은 관 위로 수북이 쌓여만 갔다.
우리는 율리아 자매의 유언을 들어주기로 했다. 하얀 수의 한 벌에 관을 묶을 소창 한 필을 준비했다. 밧줄로 관을 묶지 말아 달라고 유언처럼 말했던 율리아 자매의 관에 매달린 하얀 소창이 깃발처럼 유난히도 펄럭였다.
그것은 아우성이었다. 세상을 잘못 살다 가는 율리아 자매의 소리 없는 절규였다. 찢어지는 가슴을 움켜쥐고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율리아 자매의 통곡이었다. 그렇다고 목이 터져라 울어줄 가족 하나 없는 쓸쓸하고 외로운 죽음. 자기를 외면한 이들을 향한 통곡이자 외침이었다.
한편으로 마지막 가는 그 길 위에서 자신을 보살펴 준 것에 대한 한없는 감사 인사 같기도 했다. 어느 가족 하나 따라가 주는 이 없는 그의 뒤를 따라가며 우리는 묵주 기도와 연도를 바쳤다.
3살 때 헤어진 외동딸을 그렇게 한 번 만 보여달라고 애원했건만 가족은 끝내 들어주지 않고 그를 그렇게 보냈다. 그 딸이 보고 싶어 죽는 순간까지 피눈물을 흘렸을것을 생각하니 마음 한편에 어미로서의 통곡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묘지에 다다르니 눈이 얼마나 많이 왔던지 관을 내려놓으니 흰 눈이 관을 덮었다. 너무 꽁꽁 언 땅이라 팔 수 없다는 인부들에게 미리 준비해간 소주와 돼지고기 삶은 것을 주며 애원하고 부탁했다. 그때는 포클레인도 없었다. 곡괭이로 땅을 파니 얼마나 깊게 팠겠는가? 겨우 관 하나 들어갈 만큼 얕게 파놓고 그 위에 흙을 덮었으니 관 위에 흙이 아닌 눈을 덮은 것 같았다.
시신 세 구를 우리는 그렇게 가슴에 묻고 돌아오며 내년에 다시 분묘를 해주자 했건만 재정상황이 열악해 아직도 그들을 묘를 다시 만져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얼버무리듯 눈으로 관을 묻고 돌아오면서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날 때는 만인이 기뻐하는 사람이 되고, 내가 죽을 때에는 만인이 슬퍼하는 자가 되어라.”
내가 죽을 때에 죽음의 평가가 나올 것이다. 나의 죽음을 가슴 깊이 슬퍼해주고 울어 줄 이가 몇몇이나 될까? 주님! 죽은 율리아 자매와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을 그의 딸에게 주님의 축복 내려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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