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서울가정법원은 서울 도심에서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 등을 훔쳐 달아난 혐의로 피고인석에 앉은 A양에게 아무런 처분을 내리지 않는 ‘불처분 결정’을 내렸다. 판사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렴.” 무거운 보호 처분을 예상하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던 A양이 쭈뼛쭈뼛 일어나자 판사가 다시 말했다. “자, 날 따라서 힘차게 외쳐 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예상치 못한 재판장의 요구에 잠시 머뭇거리던 A양이 나직하게 “나는 세상에서…”라며 입을 뗐다. 판사는 “내 말을 크게 따라 하라”고 했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큰 목소리로 따라 하던 A양은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고 외칠 때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반에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A양은 간호사를 꿈꾸던 발랄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남학생 여러 명에게 끌려가 집단폭행을 당한 후 후유증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며 학교에서 겉돌았고, 비행 청소년과 어울리면서 범행을 저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아이는 가해자로 재판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삶이 망가진 것을 알면 누가 가해자라고 쉽사리 말하겠어요? 아이의 잘못이 있다면 자존감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존감을 찾게 하는 처분을 내려야지요.”
판사는 눈물범벅이 된 A양을 법대(法臺) 앞으로 불러 세웠다.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중요할까. 그건 바로 너야. 그 사실만 잊지 않으면 돼. 그러면 지금처럼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을 거야”라며 A양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소아청소년기의 많은 문제의 바탕에는 낮은 자존감이 깔려있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나는 못났다고 자신을 비하하거나 스스로를 존중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아이들의 동기, 태도, 행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모든 것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자존감이 결여된 아이들은 스스로가 “무능력하다”,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쉽게 비관적이 되고 낙담을 잘하게 된다. “나는 나쁜 아이야, 잘하는 게 없어, 노력해도 엄마가 꾸지람할 텐데 뭐”하는 식이다. 결과적으로 어른들의 눈치를 보거나, 학업성적이 떨어지게 되고 쉽게 사소한 실패에도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자아존중감(self-esteem)이란 내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 내가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 내가 나를 가치 있고, 사랑스럽고, 소중하며, 능력이 있고, 용서할 수 있고, 수용할 수 있는 존재로 느끼는 마음을 말한다. 또 자신에게 생각하는 능력이 있으며,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알고,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믿음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자아상이라고 한다. 인간은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기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하게 되는데, 마음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긍정적일 때,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
특히 성장기의 아이들은 가능한 한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된다. 학업수행, 친구사이의 원만한 관계, 실수나 실패를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능력, 일에 대한 동기 등이 아이의 자존감과 자신감에 영향을 끼친다.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자신감이 있어야 정신적으로 건강한 아이가 될 수 있다.
아이가 어떤 일을 하면 옳고, 어떤 일을 하면 그르다고 부모는 가르친다. 하지만 도가 지나쳐 아이에게 죄책감을 갖게 한다면 아이가 자신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물론 잘못한 것은 반드시 고쳐주어야 하고 필요하면 충고를, 또 경우에 따라서는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부모가 “창피한 줄 알아라”하는 식의 태도를 너무 오래 계속 하면 아이는 결국 자신이 나쁜 아이이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아이이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이가 ‘나는 왜 이럴까?’하고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하다 보면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부모는 아이의 실수를 너그럽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잘못한 것을 고쳐나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생텍쥐베리는 “나는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존재이다. 내 스스로 나를 인정하기만 한다면…”이라고 말했다. 부모인 나는 우리 아이를 존재 자체로서 인정하고 자녀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있는가? 부모가 자녀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줄 때 아이의 자존감은 올라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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