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마 가톨릭 교회가 과거 불의와 범죄에 연루된 데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2000년 3월 12일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실수, 믿음 없음, 모순, 활기없음』에 대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포괄적 용서를 구하는 의식을 주재한다고 한다.
이번 조치늰 교황이 반 유대주의에 대한 기독교의 책임을 인정한지 200년만의 일이다. 교황은 19세기 전반까지 지난 600년간 종교재판에서 행해진 잔학행위에 대해서도 함께 사죄할 예정이다. 이 기간을 교회의 자녀들이 참회없이 제쳐놓을 수 없는 고통스런 장으로 『진리의 이름으로 불관용과 폭력을 휘두르는 데 동의했던』기간이라고 말했다.
종교의 이름으로 인류 역사에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용기있는 결단에 우리는 경배하는 마음을 지니며, 우리들 스스로를 돌아다보게 한다.
『참혹했던 과거를 적절히 수습할 수 있으려면 반드시 그 과거를 기억해야만 한다. 용서가 필요하다면 용서해야 하지만 잊어서는 안된다. 기억함으로써 재발을 막을 수 있다. 과거청산에 실패한 나라는 여러 세대에 걸쳐 그 후유증으로 고통받는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가 한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고백과 참회를 통해 참혹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기와 새천년을 맞고 있는가. 600년의 역사는 고사하고 지난 반세기 역사마처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그 반세기 역사에서 수많은 비극과 범죄가 저질러졌건만, 5년전, 10년전의 진실미저 암흑에 묻혀있다. 진실을 밝힐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회피하고 침묵하고 더 나아가선 진실을 숨기고 왜곡까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12.12 당시 신군부의 집권과정에 관한 증언을 끝내 거부했다. 얼마전까지 법무부장관이었고 검찰총수였던 김태정씨는 막무가내로 입을 다물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의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회 앞에서 천막을 치고 의문사의 진실을 밝혀 달라고, 88년부터 시위를 시작했지만 정부마저 아직까지 요지부동이다.
이럴때 가장 먼저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고백과 참회가 있었느냐 하는 물음이다. 가톨릭 신앙인이며, 대학에서 젊은 세대를 가르치고 있는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한때 정계에 몸담고 있었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식의 위선과 거짓이 이 시대만큼 극심한 것은 보지를 못했다.
개신교의 교세로 말하자면 우리 사회도 서구사회에 그리 뒤지지 않는데, 서구 사회의 고백과 참회의 전통과 문화는 왜 형성되지 목한 것일까. 우리 사회가 거짓을 추방하고 정화된 모습으로 새롭게 새천년을 시작하려면 참회를 은총과 연결시키는 전통과 문화를 세워 나가야 한다. 지도층에서부터 부도덕하고 부정직하며 무책임한 자신에 대해 고백하고 참회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루소는 『잘못을 부끄러워 하라. 그러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역사학자 토인비는 『자기가 사는 곳만이 세계라는 자기중심적 시야의 편향을 퍼로키얼리즘(지방인 근성)』이라 부르고 「전체로서 역사하는 마음」을 역설했다.
새 밀레니엄을 맞는 우리의 마음이 진실고백에 있지 않고, 거직과 위선, 그리고 부도덕과 무책임에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새천년의 주인공인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물려 줄 수 있겠는가. 최근 문화부장관을 지낸 이어령 교수가 쓴 동시집 「천년을 달리는 아이」중에서 「요술 안경」은 인상적이다. 진실과 정의가 은폐되고, 그것을 가리는 우리의 눈마저 흐려져 있는 세상에 던지는 하나의 경고처럼 느꼈다. 최소한 우리가 지금 아이들 앞에 정직하지 않고서야 언제 그들 앞에 정직하고 떳떳하게 설 수가 있을까?
『만약 이 세상에 요술 안경이 있어서 미운 사람도 예쁘게 보이고 뚱뚱한 사람도 날씬하게 보이고 키 작은 사람도 키 크게 보인다면 이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될까? 곱고 미더운 얼굴로 판단할 수 업고, 작고 큰 키로 판단할 수 없고, 뚱뚱하고 날씬한 몸으로 판단할 수 없다면 그렇다면 무엇으로 사람을 판단할까?
누가 약속 잘 지키나 그걸 보고 판단하고 누가 남을 잘 돕는가 그걸 보고 판단하고 이렇게 사람들을 판단하게 될거야. 새천년이 오고 어른이 되면 나는 이런 요술 안경을 많이 많이 만들어 모든 사람이 쓰게 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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