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이 되면 저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고해성사를 보기 전 집안 대청소부터 합니다. 며칠 전 벼르고 벼르던 발코니 청소를 마쳤습니다. 크고 작은 화분 때문에 청소를 하려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라 자꾸 미루었던 일입니다.
저는 동물보다 식물을 좋아해 화분 욕심이 많습니다. 이사 다닐 때마다 책은 과감히 솎아 버리면서도 화분은 작은 것 하나도 지성스레 함께 옮겨오곤 했지요. 어쩌다 긴 겨울 여행에서 돌아와 얼어 죽은 화초를 보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화초만은 곁에 두고 돌보며 살려고 합니다.
들여오고 떠나보내고를 거듭하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군자란과 문주란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30년도 더 넘었는데 유사점보다는 상이점이 더 많습니다. 군자란은 화분 안에서 뿌리가 번식하여 계속 새끼를 칩니다. 덕분에 오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가 있지요. 그런데 문주란은 독야청청 혼자만 훤칠하게 자랍니다. 또 군자란은 이른 봄 소담하게 주황색 꽃을 피우지만 문주란은 유월이나 되어야 실타래 같은 순백색 꽃을 피웁니다. 향기로 치면 비교할 수도 없이 문주란이 ‘따봉’이고요.
문주란은 30여 년 전 친구가 조그마한 화분 하나를 주어서 기르기 시작했는데, 그 꽃을 보는데 20년쯤 걸렸습니다. 때가 되면 분갈이를 해 주고, 겨울이면 거실에 들여놓고 온갖 정성을 다해 기르다가 환상의 꽃을 맞이했을 때의 기쁨이란! 그야말로 기다림을 배우게 해 준 꽃입니다. 향기가 하도 좋아 군자란처럼 이웃에게 분양하고 싶어 선물한 친구에게 번식 방법을 물었습니다. 어머나, 그렇구나! 꽃이 지고 나면 그 꽃대의 끝에서 밤톨만한 씨방이 생긴다고 그걸 잘 간수했다가 봄에 화분에 묻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걸 모르고 저는 꽃이 시들고 나면 너덜너덜 보기 흉해 유난히 긴 꽃대를 얼른 잘라 버리곤 했었지요. 하여간 뒤늦게나마 성공, 성공, 이웃에게 분양을 하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어느 해, 씨방 네 개를 심었는데 싹이 세 개만 났습니다. 하나는 죽었나보다 했더니 이듬해 봄에 한 개가 다시 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그 해에 못 나온 뿌리가 그 이듬해 나오다니요! 하여간 문주란은 저에게 ‘기다림’이란 화제를 철저히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금년에는 또 다른 것을 배웠습니다. 해마다 여름이면 화분을 아파트 단지 앞에 내 놓고 햇볕을 실컷 쬐어 주는데 화분이 너무 커서 옮기기가 힘들어 그냥 발코니에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상하게 문주란에만 진딧물이 끼기 시작했습니다. 물을 줄 때 열심히 씻어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약을 사다 뿌려 줘야지 하다가 게으름을 피웠더니 그 결과는 너무나 비참한 모습입니다. 너부죽한 잎 앞뒤로 하얀 반점 같은 것을 조랑조랑 달고 맥없이 처지는 것입니다. 커다란 잎사귀가 진딧물의 위력에 시달려서 아무 생기가 없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아하, 햇볕은 바로 하느님 사랑! 햇볕을 쬐어주면 그렇게도 싱싱하던 잎이 발코니에 가두어 놓으니 이토록 시드는구나. 우리도 주님을 바라보며 빛 안에 있지 않고, 혼자 어둠 속에 살면 영혼이 이토록 시들어가겠구나. 고해성사도 자주 보지 않고 죄 중에 있으면 이렇게 시들어가겠구나. 교회가 부활이나 대림 때 판공을 보도록 권장하는 것은 우리를 빛의 세계로 끌어내려는 것이구나…
문득 옆 동에 사는 한 자매님이 떠올랐습니다. 40대 후반의 남편이 쓰러져 지금 3년째 누워있는 가정입니다. 처음엔 소공동체에서 묵주기도로 힘을 모았지만, 차츰 무관심해졌고 결국 자매님은 교회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저는 문주란 잎에 끼인 악의 세력을 닦고 또 닦아내면서 자꾸만 그 자매를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쓸쓸할까. 영혼이 멍들고 있을 텐데…. 저는 주님 오시기 전, 그 자매부터 찾아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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