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에는 때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그 중에서도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마태오 21,33~46)는 인간에게 때가 왔음을 알리고자 애쓰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로 잘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들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그분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 죽여버리고 말핬다.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건 옛사람이나 현대인이나 다를 게 없다.
세상일에는 무슨 일이나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사서삼경 가운데 중용은 때의 철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용은 가르침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시중(時中·때에 꼭 알맞음)이라 할 수 있다. 때에 알맞게 나아가고, 때에 맞게 물러날 줄 아는 사람을 시인(時人)이라고 하는데, 곧 때를 알고 때에 맞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유가에서는 공자가 바로 時人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때에 맞게 행동할 때 그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중용의 삶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중용을 잃은 시대이다. 우리는 제철을 벗어난 과일과 야채를 먹고, 계절에 관계없이 수영을 즐기고, 한겨울에도 반소매를 입고 지낼 수 있는 아파트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자연엔 때가 있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 이상 자연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때에 맞지 않는 삶은 필연적으로 기울기 마련이고, 삶의 축이 한쪽으로 기울다보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자연의 법칙을 무시한 인간, 그 방종의 결과가 바로 환경재난이다. 자연의 법칙을 무시했다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를 무시한 것과 마찬가지다.
인간은 자연을 떠나 살 수 없듯이 하느님의 섭리를 떠나서도 살 수 없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지옥은 사랑이 사라진 절대적 고독」이라고 정의했다. 지구촌 곳곳에서 터지는 지진, 홍수, 기아, 빈곤 등은 아직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이 담긴 경고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만약에 우리가 자연에서 단절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더 나아가 하느님과의 관계마저 단절되고 만다면? 그것은 정말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섭리를 벗어난 삶을 계속 고집하는 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개선은 어렵게 되고 만다. 따라서 환경위기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교회의 환경사목과 환경에 대한 신학적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히 요청된다.
지금이 바로 그 때임을 안다면 그가 곧 이 시대의 時人이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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