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늦가을, 유학 가 있는 아이를 돌봐주기 위해 미국 동북부 메인 주의 주도‘州都’인 오거스타로 떠날 무렵이었다. 그 때 두 가지를 기도드렸다.
‘낯선 곳에서 외로움의 바닥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시고, 그 바닥에서 하느님을 꼭 만날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는 절박한 내용이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심연이란 얼마나 두려운가. 그러니 어차피 감당해야 할 일이라면 정면승부를 한 번 해보자는 얕은 속셈이었는지도 모른다.
출발 전부터 드렸던 기도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인적이 드문 도시는 스산하기만 했다. 물론 아는 사람도, 도와 줄 사람도 없었다. 매일 지도와 일요일 판 신문을 들고 부동산 소개업자와 함께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추수감사절 무렵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채 녹기도 전에 내리고 또 내렸고, 밤은 터무니없이 일찍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가 머물던 모텔 방으로 전화가 왔다. 놀랍게도 한국 사람이었다. 그녀는 부동산 소개업자에게 얘기를 들었다며, 무얼 먼저 도와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었다. 그후 메인 주 한인공동체 여러 가족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온 가까운 친척처럼 우리를 챙겨주셨다. 그 따스한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없이 외롭고 추웠던, 그래서 더 포근하고 감미로웠던 그해 성탄절에 대한 기억을 나는 오래도록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때때로 교회의 가르침을 가슴으로 다 받아들일 수 없을 때도 있고, 주일을 지키지 못한 채 게으름을 부리며 빈둥거릴 때도 많다. 그러나 내 삶의 광야인 그때, 그곳에서, 내가 하느님을 만났다는 것을 결코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삶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될 수 있도록 그때 그때마다 필요한 퍼즐 조각을 미리 준비해두고 계신 놀라운 주님, 그래서 올해도 마음을 여미며 성탄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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