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희 오남매 중 외아들인 오빠가 팔순을 맞았습니다.
한국동란 때 피란을 떠나시던 아버지가 유일하게 데리고 갔던 오빠. 인민군들에게 아버지가 붙들려 가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보아야 했고, 다음날 인근 야산에서 총살을 당해 널브러져 있는 아버지의 주검을 찾아 구덩이를 파고 손수 묻어야만 했던 오빠. 1965년에는 군의관으로 월남전에 참가해 갓 영세한 저로 하여금 밤마다 가슴 졸이며 묵주기도를 바치게 했던 오빠.
항상 아버지 같이 느껴졌던 그 오빠가 작년에 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인 오빠는 이 나이에 무슨 수술이냐고 그냥 죽음을 기다리겠다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가족들은 속수무책이었지요. 몸이 마를 대로 마르면서 몇 개월이 그냥 흘렀습니다. 그러던 중 오빠가 근무하던 전주 예수병원에서 강제로 끌어다 수술을 시켰지요. 그후 올케의 수고로 차츰 회복이 되어 마침내 팔순을 맞게 된 것입니다.
4남매를 둔 오빠는 환갑도 칠순도 그냥 넘겼습니다. 부모님이 동란으로 지천명도 못 채우고 떠나셨는데, 내가 무슨 잔치냐며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었지요. 그런 아버지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외아들인 조카가 제 누이동생들과 상의해 늦가을 주말 가족모임을 마련했습니다. 거기에 아직 생존해 있는 큰 고모와 막내 고모인 저를 초대한 것입니다. 환갑이며 칠순을 안 하기는 언니나 저도 마찬가지였지요. 조실부모에 남편까지 환갑 전에 사별했으니 그런 행사가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그런 저희들이기에 이번 가족 모임은 정말 뜻 깊었습니다. 그것도 수술 덕분에 그만큼이라도 건강을 찾아 가능해진 것이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었지요.
약속 장소인 변산 대명콘도로 서울, 인천, 수원, 전주, 광양 등지에서 모두들 달려왔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 손잡으랴, 저 사람 손잡으랴,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 자리에 조카는 마른 삭정이 같은 아버지를 모시고 나타난 것입니다. 눈물과 웃음이 교차하는 만남의 시간! 일행 중에는 유방암 투병으로 모자를 쓰고 나타난 조카딸도 있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마음을 어느 정도 진정시킨 우리는 채석강 가로 나가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작은 음악회를 가졌습니다. 모두가 하나로 결속되는 데는 음악처럼 좋은 게 없다는 생각에 제가 하모니카를 준비해 갔거든요. 저는 작년에 칠순 기념으로 하모니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서툰 대로 애창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어 가족들과 함께 즐기고 싶었습니다. 스무 명 대가족을 한 방에 모아 놓고, 개인단위, 가족단위, 청소년 단위, 부부 단위 노래를 시키고, 다 함께 성가 61번으로 마감을 했지요. 모두들 예상치 못했던 즐거움을 누렸다며 박수를 아끼지 않아 저도 큰 기쁨과 보람을 느꼈답니다.
기쁨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저는 서울 사는 막내 조카딸네 차를 타고 갔는데, 가다가 수원 사는 조카딸네와 만나 아름답기로 소문난 공세리성당을 들른 것입니다.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성당에서 300년 넘은 팽나무며 느티나무도 구경하고, 박물관에 들러 신앙 선조의 이모저모를 접하면서 옷깃을 가다듬을 수 있어 정말 기뻤답니다. 오는 길엔 또 익산의 나바위성당에 들렀지요. 대치동성당 레지오 단원인 조카사위, 지역 반장인 조카딸, 복사단인 손자, 모두 한마음이 되어 그 길로 돌아오는데 마침 광주교구 금호동성당에서 왔다는 천여 명 교우들이 김대건 신부님 유해에 경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얼른 그들 행렬에 끼어 그 귀한 예식에도 동참하고 왔으니 그야말로 횡재를 만난 셈이지요.
그러나 그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제가 뿌린 신앙의 씨앗 하나로 친정 식구 모두가 하느님 백성이 되어 성가정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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